상처를 적을 때 치유는 시작됩니다.

by 별빛소정
태어난다는 건 늘 어렵다. 새도 알에서 나오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자. 그 시도가 늘 어렵기만 했는가? 아름답지는 않았는가? 세상에 그것보다 더 아름답고 또 쉬운 길이 있을까?
- 헤르만 헤세


헤세의 이 문장을 마주하며 제가 지나온 시간들을 가만히 떠올려 봅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탄생을 넘어 기존의 나를 깨고 나오는 용기 있는 투쟁입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고치를 뚫고, 새가 알에서 깨어나며, 뱀이 성장을 위해 낡은 허물을 벗어던지듯 우리 역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저에게 그런 과정은 2024년 10월, 브런치 작가가 되어 첫 글을 올리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매일 글을 쓰며 어제의 나를 보내주고 오늘의 나로 새롭게 태어나는 소중한 의식을 치르고 있습니다. 나는 글을 쓰며 다시 태어났습니다.


사실 제 안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한 얼룩들이 많았습니다. 가장 가깝기에 더 깊은 상처를 남겼던 가족들, 직장에서 겪었던 억울한 오해와 모함들, 갑작스러운 경제적 어려움등이 제게 많은 생채기를 만들었습니다. 글을 쓰기 전까지 그 얼룩들은 제 안에서 길을 잃고 저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화면을 열고 그 상처들을 꾹꾹 눌러쓰기 시작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활자가 된 고통은 더 이상 저를 할퀴지 않았습니다.


글로 옮겨진 사건들은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 풍경’이 되었고, 휘저어진 감정의 앙금들은 글쓰기라는 정화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바닥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이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글로 쓸 수 있고, 글로 쓰고 나면 치유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글을 쓰기까지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헤세의 말처럼 그 시도가 늘 어렵기만 했을까요? 고통을 문장으로 바꾸어내던 그 순간들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덕분에 저는 이전보다 더 행복해졌고, 저를 아프게 했던 세상을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글은 제 삶의 떼어낼 수 없는 일부가 되었습니다.


김종원 작가는 "살면서도 글을 잊어본 적이 없고, 쓰면서도 삶을 잊어본 적이 없다"는 문장이 글을 대하는 태도의 전부라고 합니다. 저 역시 이제야 그 경계에 서서 세상을 봅니다. 제가 살아온 나날들이 고스란히 글이 되고, 그 글을 쓰는 동안 제 삶을 더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알 속에 갇혀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그 안의 안락함에 머물고, 누군가는 벽을 두드리다 포기하기도 합니다. 알을 깨는 고통은 파괴가 아니라 '도약'을 향한 신호탄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의 딱딱한 껍질을 부수고 매일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는 일과 같습니다.


삶이 비록 상처투성이일지라도 그것을 기록하는 순간, 고통은 한 편의 서사가 되고 상처는 흉터가 아닌 아름다운 무늬가 됩니다. 쓰는 삶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으며, 우리를 가장 눈부신 탄생의 순간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오늘도 나는 기록합니다. 나는 어제보다 더 선명해집니다.


살면서도 글을 잊어본 적이 없고 쓰면서도 삶을 잊어본 적이 없다.
-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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