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정 Dec 17. 2024

인생은 대충 살아야 한다.

열심히 산다고 꼭 원하는 것을 이루는 건 아니다. 열심히 하면 힘이 들어간다. 힘이 들어가면 부담이 되고, 부담은 스트레스를 낳는다. 그러다 보면 균형이 깨지고, 깨어진 균형은 결국 예상치 못한 곳에서 폭발하고 만다.


나는 단 한 번도 다이어트에 성공해 본 적이 없다. 매달 조금씩, 매년 몇 그램씩 늘어나 지금은 인생 최대 몸무게를 달성하고 있다. 다이어트를 할수록 살이 더 찌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다.  다이어트라는 단어만 들어도 식욕이 폭발한다. 평소에 좋아하던 샐러드도 "다이어트 식단"이란 이유로 맛이 없고, 좋아하던 치킨의 퍽퍽 살조차 다이어트용 닭가슴살로 바뀌면 입에 대고 싶지 않다. 운동을 시작한 순간부터 식욕이 터지는 경험. 다이어트를 하면 할수록 나는 더 뚱뚱해졌다.


현재 직급으로 승진에 10년이 걸렸다. 물론 내 능력의 부족 때문이지만 첫 5년은 그저 그러려니 넘겼다. 하지만 그 이후 5년은 괴로운 시간이 이어졌다. 매년 12월, 승진 발표 시즌은 좌절의 달이었다. 절망 속에서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기쁨조차 없었다. 승진을 위해 애쓰면 애쓸수록 삶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직장 생활의 재미도 사라졌다. 그러다 10년째 되는 해, 승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다.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모든 걸 놓았고, 바로 그 해 승진했다.


아이를 키울 때도 욕심이 앞섰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 "영재로 키워 하버드까지 보내야지" 하는 기대에 영어유치원과 영재과학학원을 보냈다. 초등학교 땐 영어, 수학, 피아노, 태권도등 학원 뺑뺑이를 돌렸다. 그런데 지나친 기대는 사춘기 무렵 역효과로 돌아왔다. 아이는 학교마저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고 밤새 게임을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자퇴를 시켜달라고 매달리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때 깨달았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것을.



50대, 진짜 삶이 시작되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에는 도전의 삶을 살았다. 못할 게 없다는 생각으로 자의식이 높았고 직장이 있으면서도 더 나은 일을 찾아다녔다. 미래를 대비해 늘 어학 학원에 다녔다. 직장 안팎에서 공모전과 외국연수의 기회를 잡으려 힘썼고 성과도 있었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던 30~40대에는 가정과 일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 애썼다. 늘 직장과 가정 가운데서 줄타기하는 심정이었다. 본사에 근무하거나 해외로 나갈 큰 기회가 있었지만 늘 아이들 때문에 포기했다. 그때 내 삶의 목적은 사회적 성취보다 아이들을 잘 키우는 데 있었다.


50대에 들어서야 진짜 나를 찾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나를 붙잡고 있던 부모로서, 직장인으로서 의무를 내려놓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비로소 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전까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외부환경에 따라 나를 맞추며 살아왔다. 나로서 진짜 삶은 50대에 시작되는 것 같다. 기쁨과 슬픔과 좌절과 고통과 온갖 감정들을 다 겪고 50대라는 트로피를 달성했다. 훈장과도 같은 50대를 춤추듯 축제처럼 살고 싶다.



진리를 깨달은 순간


삶이란 고단한 여정이다. 수많은 실수와 실패와 후회들을 다 겪고 나서야 "대충 사는 법"의 진리를 알았다.

나를 잡고 있던 헛된 욕심도, 되지 않을 희망도 내려놓고 나서야 삶의 축제가 되었다. 자기 개발서에 나오는 목표니 삶의 방향이니 하는 억지는 던져버리고 나는 내 안을 바라본다. 지금 현재 여기에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가진 나. 지금 나는 살아 있는 나를 마주하고 있다. 과거의 후회도, 미래의 불확실성도 내려놓고 오직 현재를 바라본다. 힘을 빼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삶이 보인다. 이제야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열심히 살 수록 꼬이는 인생을 내버려 두고 다이어트를 할수록 더 찌는 몸뚱이도 있는 그대로 놓아둔다. 자기 길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인생도 묵묵히 지켜봐 준다. 투자를 할수록 마이너스만 쌓여가는 주식계좌도



힘을 빼야 행복이 온다


열심히 살겠다는 열정을 가진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대충 살아라. 억지로 하지 말고, 그저 즐겨라.”
아이를 열심히 키우겠다고 하면 "함께 웃고 노는 순간을 즐겨라."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대충 살아야 진짜가 보인다. 삶은 억지로 힘을 주고 달려가야 하는 경주가 아니다.

대충 사는 법을 알면 오히려 삶의 진짜 의미가 보인다.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지 말고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몸이 가벼워지고, 아이들에게 지나친 기대를 거둘 때 서로의 진정한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지금 여기, 살아 있는 나를 바라보자.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현재를 즐기자. 힘을 뺀 삶 속에서 인생의 진짜 보물이 숨어 있다. 결국, 진정한 행복은 내려놓을 때 우리에게 찾아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