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오래될수록
서운한 일도 자연스럽게 많아진다.
서른 즈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서운하면 상대도 서운하겠지.’
그래서 말하면 싸움만 날까 봐 참았고,
때로는 거울처럼 똑같이 보여주는 방식으로
내 서운함을 전할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그런데 마흔 즈음, 확실히 알게 되었다.
대부분 사람은 본인이 그러는 걸 모른다.
남의 단점은 잘 보이지만,
자신도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알면서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원래 이래. 네가 감당해줘.”
이 말은 나이가 들수록
더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하지만 관계는
참는다고 깊어지지 않는다.
대화한다고 깨지는 관계라면
그건 애초에 끝날 준비가 되어 있던 관계다.
대화를 통해 더 가까워지는 관계만이
지속될 자격이 있다.
그 사실을
나는 꽤 늦게 이해했다.
그래서 이렇게 결론 내리게 되었다.
서운함을 말할 수 있는 사람과만
내 마음을 함께 써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오히려 서로가 느낀 작은 서운함을
조용히 꺼내고
“그랬구나” 하고 들어주는 사람이
끝까지 함께 간다.
힘든 일을 겪고 나서야
과거에 눌러 두었던 감정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때는 괜찮다고 넘겼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았던 순간들.
참는다는 건
그 상황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까지 함께 묵혀두는 일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래서 나는
과거의 일은 굳이 꺼내지 않겠지만
앞으로의 관계에서는 오래 지속하고
싶은 인연에서는
서운함이 생기면
그때그때 풀려고 한다.
쌓아두면 언젠가 폭발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야 하는 시대인 것 같다
참는 관계 대신,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로.
쌓아두는 대신, 흐르게 하는 방식으로.
누군가의 마음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도 함께 지키는 방식으로.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서로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