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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정 Apr 16. 2021

아이들과 시로 만나는 날

내 마음을 노래하는 시쓰기

아이들의 글에 감탄하고 감동받는 일이야 헤아리기에도 손가락이 부족하지만, 그 중에서도 으뜸은 '시'를 쓰는 날이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를 다녔던 1980년대의 끄트머리 해에도 지금처럼 학교마다 축제를 열었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축제의 백미는 문학반의 '시화전'이었다. 예쁜 장미를 한 송이 사서 마음에 드는 시가 담긴 액자에 붙여두고 오는 것이 멋스러운 일이라 여겨지던 시절. 부러움과 질투의 복잡한 심정으로 친구들이 쓴 시 앞에 서 있던 내모습이 떠오른다.

이과생이었던 나에게 '시'는 넘을 수없는 벽이었다. '시'란 '함축적인 언어로 운율이 느껴지도록 쓴 글'이라는 선생님의 설명은, '시'란 아무나 쓸 수도 없고 저 높은 이상세계에 존재하는 완전무결한 존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게다가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은 해석하기에 바빠, 감동으로 다가올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어느새 '시'는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 되어 있었고, 나는 '시'를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내 마음에 시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사랑'과 함께였지 싶다. 대학에 입학하고 세상에 대한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고 그늘진 삶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마음이 생겨나면서, '시'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커가며, '시'는 몸을 낮추어 성큼 나에게 다가왔다.   

'시'를 생활과 동떨어진 존재, 정형화된 형식과 고상한 표현으로 써야할 것 같은 존재라 생각해 두려워했다는 것을 알았다. 내 마음이 사랑으로 들어차자 새로운 것들을 보게 되고 느끼게 되고 아파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 마음은 저절로 흘러나와 다른 이에게 전해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흘러나온 마음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순순히 들려주는 그 모든 것이 시가 아닐까 싶었다. 결국 멋들어진 표현과 고상한 시어가 문제가 아니었다. 내 마음이 세상과 통하고 사람들과 이어져야 하는 것이 '시'였다. 


그래서 아이들과 시수업을 하자면 고민이 더 깊어진다. 아이들이 나처럼 시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시를 즐기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시를 통해 세상과 이야기 나누기를 바란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시를 감상하고 쓸까. 마음을 꾸미지 않고 순순히 노래하듯 써내려가도록 안내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어른들의 시를 흉내내지 않고 자신의 감각과 마음에 귀를 기울이게 할까. 결론은 아이들은 이미 시인이라는 것이다. 어른들이 처음부터 '시란, 이렇게 쓰는 것이야.'라고 정형화된 형식을 알려주지만 않는다면, 모든 아이들은 저절로 시를 쓴다.  


아이들은 모든 감각을 총 동원해 관찰부터 시작한다. 근처 공원을 느릿느릿 함께 걷는다. 나무는 어떤 모양인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귀도 대보고 손으로 쓰다듬고 양팔 벌려 안아도 본다. 연못에 다다르면 물 속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낸다. 물에 비친 하늘도 보고, 고개를 들어 위의 하늘도 본다. 선생님이랑 같이 오니 기분이 어떤지, 내가 좋아하는 친구와 왔다면 어땠을지 이야기도 나눈다. 때로는 내가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바라본다. 그 반려동물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떠올리고, 체온을 느낀다. 눈동자도 바라보고 같이 놀고 노래도 불러준다. 같이 있지 못할 때의 마음도 떠올려보고 오래 같이 지내려면 어찌해야할지 다짐도 해본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신의 마음에 더 귀를 기울여본다. 속이 상한 일을 나무와 이야기하기도 하고, 물수제비를 뜨며 한마디씩 화풀이도 해본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을 담은 시를 쓴다.


 메 꽃 

           초 1 지우


나는 분홍색이야.

나는 나팔꽃 모양이지만 메꽃이야.


은판 나비가 자주 놀러와

나비와 놀면 기분이 좋아


비가 오면

더웠는데 시원해져

나는 메꽃이어서 좋아  



탈모나무 

            초 4 강진


나무야

넌 왜 잎이 떨어졌니

나무야

넌 무엇을 걱정하니

괜찮아

봄에 다시 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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