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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정 Apr 22. 2021

아름다운 사람

마음을 잇는 선의와 온기

“시부터 함께 읽고 시작할까?”

시를 읽자는 말에 괜한 부스럭거림과 함께 마뜩잖은 마음들이 공기로 전해진다.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한 톤 높여 주문한다….

“그냥 소리만 내지 말고, 친구들 소리를 듣고 속도 맞추자. 마음으로 읽는 거야!”          



아름다운 사람 / 조재도     


공기같은 사람이 있다.

편안히 숨 쉴 땐 있음을 알지 못하다가

숨 막혀 질식할 때 절실한 사람이 있다.     


나무 그늘 같은 사람이 있다.

그 그늘 아래 쉬고 있을 땐 모르다가

그가 떠난 후

그늘의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이가 있다.     


이런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매일 같이 만나고 부딪치는 게 사람이지만

위안을 주고 편안함을 주는

아름다운 사람은 몇 안 된다.     


세상은 이들에 의해 맑아진다.

메마른 민둥산이

돌 틈을 흐르는 물에 의해 윤택해지듯

잿빛 수평선이

띠처럼 걸린 노을에 아름다워지듯     


이들이 세상을 사랑하기에

사람들은 세상을 덜 무서워한다.     


                                                   <출처 : 아름다운 사람. 작은숲.  2017.12.20>



“선생님은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낭독이 끝나자 대뜸 한 아이가 내게 물어왔다.

‘글쎄, 나는 아름다운 사람일까?’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선생님! 솔직히 이런 사람이 어딨어요!”

대답이 늦어지자, 아이들은 ‘선생님은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구나.’ 확신하며 종알거린다. 게다가 고단하고 각박한 세상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까지 앞다퉈 쏟아내기 바쁘다.

잠시 뜸을 들이다 일부러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음,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긴 하지. 그 사람 이야기를 들려줄까?”

아이들은 의심과 기대가 반쯤 뒤섞인 눈을 들어, 이야기를 재촉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우리 가족은 부산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구서동으로 이사했다. 산기슭에 13평 대단위 임대아파트가 들어서던 중이라 동네는 어수선했다. 도로도 채 닦이기 전이라 눈만 돌리면 자리를 잡지 못한 보도블록이 비닐에 덮인 채 군데군데 쌓여있었고, 아파트 외벽 공사용 페인트통도 산처럼 쌓여있었다.

국민학교도 아직 문을 열기 전이었다. 큰길까지 내려가야 다니는 버스를 타고 옆 동네에 있는 학교까지 가야 했다. 이사하는 날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가서 전학 절차를 밟으셨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엄마는 “내일은 니 혼자 학교에 가야 하니까, 길을 단디 봐놔라. 알겠제?” 하시며 나를 단속하셨다. 그때 이미 아래로 동생이 셋이었으므로, 엄마는 아마도 동생들만 두고 학교에 나를 데려다줄 수 없으리라 여기신 듯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엄마는 돌아올 차비를 챙겨 주고 날 버스에 태웠다. 버스 안내양이 있던 시절이라 엄마는 안내양에게 장전국민학교에 내려주라고 신신당부하셨다. 하지만 출근 시간 만원 버스, 나는 속절없이 사람들에게 밀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안내양 언니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마음과 달리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다 들을만한 큰 목소리로 언니를 부르는 것이 그때는 어찌 그리 부끄러웠나 모르겠다.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그때, 한 여자아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어? 교복이잖아? 그래, 저 아가 내리는 곳에서 따라 내리면 되겠다! 휴,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타 본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그렇게 생전 처음 보는 여자아이를 흘끔흘끔 훔쳐보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서 있었다.      


제법 시간이 흐른 후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할 때쯤, 그 아이가 버스에서 내렸다.

‘어짜노? 너무 멀리 온 것 아이가...’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일단 아이를 따라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가 출발하자 넓은 길 너머로 국민학교 교문이 보였고, 시끌시끌 건널목을 건넌 아이들이 교문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고?’

분명한 것은, 어제 엄마와 함께 다녀왔던 학교 앞 풍경은 아니었다.      

무서웠다. 이대로 길을 잃고 고아가 되는 걸까? 다시는 집으로 못 돌아가는 걸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새로 이사를 와서 집 주소도 잘 모르고 집에는 전화도 없다. 장전초등학교 3학년이라는 것 말고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어마어마한 공포가 덮쳤다. 저마다 바삐 걸어가는 길 한가운데 서서, 눈물 콧물 다 흘려가며 꺼이꺼이 통곡을 했다.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에 부끄러울 여유조차 없었다.


그때였다. 한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왔다.

“야야, 여서 왜 울고 있노?”

“엉엉…. 내가…. 학교에…. 엉엉…. 다른데 내려서…. 엉엉”

“잘 못 내렸다는 말이제. 그럼 니는 어느 학교에 다니노?”

“엉엉... 장전국민학교예... 엉엉.”

“그래? 그러면 어디 보자. 자, 니 내 손 단디 잡아라. 일단 건널목부터 건너야 된데이.”

나는 겁도 없이 아저씨 손을 덥석 잡고 건널목을 건넜다. 그리고 학교 정문 앞 정류장으로 갔다.

“가만 보제이, 니 몇 번 타고 왔노.”

“51번…. 훌쩍…. 요…. 딸꾹.”

“그래, 그럼 요서 쪼매만 기다리제이. 자, 이걸로 코 좀 풀고, 눈물도 닦고.”


그새 통곡은 울음으로, 울음은 아직 제대로 꼬리를 감추지 못해 딸꾹질로 변해 있었다. 51번 버스는 곧 도착했고, 아저씨는 안내양에게 장전국민학교에 가는 버스인지 확인한 후 나를 버스에 태웠다. “야가 장전국민학교에서 내려야 한다니까, 꼭 좀 신경 써서 내려주이소.”라고 부탁 말도 잊지 않았다. 버스는 곧 출발했고, 난 감사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한 채 퉁퉁 부은 얼굴로 손만 흔들고 서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혼날까 무서워서 엄마에게 말도 못 꺼냈다. 그날 밤 얼마나 곤하게 잤는지 모른다. 한 달쯤 지난 후 엄마에게 말했다가 그제야 말했다는 것까지 덤으로 해 등짝을 흠씬 맞았다.      


아마도 출근길이었을 게다. 얼굴은 잊었지만, 아저씨는 양복을 입고 가방을 들었었다. 얼마나 바쁜 시간이었을까.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순간, 아저씨가 내밀어준 손 덕분에 나는 무사했고, 평생을 기억하며 살고 있다.      


공기 같은 사람이 있다.

편안히 숨 쉴 땐 알지 못하다가

숨 막혀 질식할 때 절실한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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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들에 의해 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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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세상을 사랑하기에

사람들은 세상을 덜 무서워한다.          





“이제 그 아저씨 얼굴은 기억나지 않아. 그렇지만 비슷한 상황이 되면 선생님은 언제나 그 아저씨가 생각나. 그래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 다시 고개를 돌려 바라보게 되고,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 노력한단다. 아저씨가 선생님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

“어떠니? 선생님이 그랬지?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고 했지? 이제는 믿겠니?”

아이들은 진짜냐고,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냐고 거듭거듭 확인하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어디 그 아저씨뿐일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반백 년을 살아오는 동안, 아름다운 사람들을 참 많이도 만났다. 그 온기가 있어 어려운 시간을 견디고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온기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핵심이라 믿는다. 아저씨가 어린 나에게 베풀었던 선의 그리고 내가 느낀 온기, 안전함을 기억하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하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좀 더 맑아지고 따뜻하고 아름다워지길 바란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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