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현정 Apr 26. 2021

나를 잘 돌본다는 것

산을 오르며

일요일 아침, 미세먼지 없이 맑은 하늘을 내다보며 남편이 한 마디 건넨다.

"날씨 진짜 좋다. 우리 산책 갈까?"

할 일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지만 곧 머리를 흔들어 머리를 비운다.

"그럴까? 그러지 뭐. 가자."


귀찮다는 중학교 1학년 막내까지 사정반, 협박반으로 꼬드겨 집을 나선다. 막상 나서니 날이 좋아 그런가 발걸음이 가볍다. 막내 녀석도 그 새 제법 보폭이 넓어지고 속도가 붙었다. 느린 내 걸음에 맞춰주느라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만보는 걸어야지, 딱 만보만 걷고 다시 들어오자!"

멀리 보이는 옥구산까지는 작은 개천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도로가 잘 닦여 있다. 남편과 막내는 자전거를 타고 이 길 중간까지는 가봤다고 하는데, 나는 오늘이 처음이다.  길이 닦인 지 이미 3년이 지났는데 말이다. 


셋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뒤에서 '따릉따릉' 자전거 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5살쯤 되었을까? 아빠와 함께 딸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다가온다. 

"여보, 잠시 멈춰봐. 길이 좁아지니 아이 먼저 보내주고 가요. " 

우리 셋은 나란히 한 줄로 서서 잠시 속도를 늦춘다. 우리를 지나쳐 달려가는 꼬마 아이의 엉덩이가 속도를 내느라 힘을 준다. 토실토실 귀엽다. 

또 조금 가다 보니 다리 밑에 스프레이로 그림이 잔뜩 그려져 있다.

"이렇게 스프레이로 벽에 그리는 그림을 뭐라 그러더라?"

"그래비티 아니야?

아들이 대답한다. 

"그래비티는 중력 아니냐?"

아빠의 대답에 아들은 머쓱해하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뒤적인다.

"아닌가? 잠깐만... 아, 그래피티네."

그래피티면 어떻고 그래비티면 어떤가. 오랜만에 맛보는 셋의 산책과 대화가 달콤하다. 


옥구산 아래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큰 아이를 이 동네에 이사 온 다음 달에 낳았다. 이제 스물셋이 되었으니 여기서 산 지도 벌써 스무두 해. 공원도 나이를 먹어 나무들이 울창하다. 10여 년 전 아이들과 돗자리를 펴고 책도 읽고 배드민턴도 치던 잔디밭에는 역시 새로운 가족들의 나들이가 한창이다. 비슷비슷한 사람 살이가 정겹다. 


"어느 쪽으로 갈 거야?"라는 물음에 남편은 "산 아래를 한 바퀴 돌까?" 한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정상에 올라가야지!" 

오지 않겠다 할 땐 언제고 아들 녀석이 오히려 욕심을 낸다. 나는 슬쩍 아들의 편이 된다. 

"그래, 여보. 오랜만에 왔는데 올라가 보자." 

성큼성큼 앞장서는 아들 녀석의 뒷모습을 보니 좋다. 새소리가 나무 사이를 채운다. 새소리를 구분할 만큼의 귀는 갖지 못했지만, 어찌나 소리가 맑은지 한참을 서서 넋을 놓고 서 있었다. 저만치 앞서가던 남편이 뒤를 돌아보며 재촉한다.


옥구 산은 해발 95미터의 나지막한 산이다. 등산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산'이라 부를 수 없다 할만치 아담한 산이다. 그래도 둘레길을 잘 닦아두어 산책할 코스가 아기자기 잘 조성되어 있고 정상에 만들어 둔 정자에서는 멀리 바다와 동네가 한눈에 들어온다. 너댓 살 아이들도 한 발 한 발 올라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올라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헉헉거리는 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꾸 돌아보니 얼굴도 화끈댔다. 아들 녀석은 이미 꼭대기까지 올라갔나 보이지도 않고, 고맙게도 남편은 가끔 뒤를 돌아보며 멈춰 서서 기다려준다. 그리고 괜찮냐며 묻는다. "천천히 올라갈게. 먼저 가."라며 흔든 손은 마음과 달리 허공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제멋대로 춤을 췄다. 그동안 제대로 걷거나 산을 오를 기회가 없었던 내 팔다리는 마음과 달리 천근만근 쇳덩어리를 달아놓은 듯 쉬 움직이지가 않았다.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올라가다 불현듯 부끄러움이 확 밀려왔다. 

내 한 몸도 간수하지 못하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숨이 턱에 닿아 대답도 제대로 못하는데, 남편과 아들은 괜찮은지 물어볼 엄두를 낼 수도 없었다. 

'누군가의 고통을 돌아보며 공감하고 연민이든 연대든 손을 내밀기 위해서는 내 몸부터 제대로 간수해야 하는 거구나.'  '내 생활, 내 건강을 제대로 돌보는 것은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한 기본인 거구나.' 

자신의 몸과 삶을 잘 돌보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얼마나 모순된 말인가. 발바닥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고통과 함께 반성과 부끄러움도 나를 채워나갔다. 


자신의 안위를 개의치 않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이 자신을 잘 보살피고 아끼는 일이 '이기적이거나 개인주의적이다.'라는 결론으로 반드시 이어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한동안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진 적이 있다. 그러한 정성으로 사람을 대하면 사람살이가 훨씬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제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람도 사랑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을 안다. 마찬가지 아닐까.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돌볼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귀하게 여기고 돌볼 바탕이 되어 있는 것이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돌보지 않는 사람은, 제 삶의 무게도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타인의 삶에 애정을 가지기 힘들다. 타인의 삶에 눈을 돌리고 세상이 살만하다 생각할 수 있는 '낙관적 사고'는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상의 정자에 앉아 시원한 물을 마시니 터질 듯한 폐도 심장도 다시 평온해진다. 

"당신, 평소에 운동 좀 해야겠어." 

"엄마, 여기 별로 높은데도 아닌데 큰일이야."

걱정하는 남편과 아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게. 나를 아끼고 건강을 유지하고 윤이 나도록 잘 돌보아야겠네.' 



작가의 이전글 아름다운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