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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정 Apr 25. 2022

마니산 오르기

50일 글쓰기 - 07

토요일 일이 밤늦게서야 끝나 굉장히 피곤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남편이 씻고 준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도무지 잠을 떨치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애초에 남편 혼자 가기로  한 산행이라 나는 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 그랬나 보다. 

"여보, 나 다녀올게."

막상 남편이 나가며 건넨 인사에 깜짝 놀라 쫓아 나갔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허리를 안고 등에 잠시 기대 말했다.

"운전 조심해요!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몸을 돌려 나를 보며 말했다.

"가면 되지!"

이런,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음, 지금 씻으면 늦어질 텐데, 차도 막히고..."

당황한 나는 말을 더듬으면 가까스로 변명거리를 찾는다.

"간단히 준비하면 얼마 안 걸리지, 기다릴게."

"그래? 그럼 10분만 기다려줘!"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아, 망했다.' 


하지만 막상 따라나선 마니산 산행은 생각보다 훨씬 더 근사했다.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모자를 쓰고 물과 간식을 챙겨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도착한 주차장에서 마니산 참성단에 오르는 방법은 2가지가 있었다. 1004개의 계단을 오르는 것과 상대적으로 완만한 등산로를 오르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계단으로 올라가 등산로로 내려온다 했다. 하지만 남편과 나 둘 다 무릎관절이 뒷받침을 못해 줘, 등산로로 올라가 등산로로 내려오기로 했다.


올라가는 길은 자욱한 안개에 싸여 산아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바위가 얼마나 많은지, 바위 위를 거의 기다시피 올라가야 했다. 게다가 중간중간 계단 길이 있어 나의 무릎과 심장을 시험했다. 비는 그쳤지만, 안개 물방울이 얼굴을 스치는 서늘한 느낌이 좋았다. 뭐니 뭐니 해도 산능선을 걷는 구간이 최고였다. 신선이 사는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정상에 올라서도 여전히 안갯속에서 잠시 쉬고 다시 내려와야 했다. 


안갯속에서 올려다본 참성단은 상상보다 훨씬 더 컸고 그 옛날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을 광경이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질 만큼 위엄이 있었다. 하늘을 나타내는 둥근기둥을 아래쪽에 세우고 땅을 나타내는 네모난 건축물을 그 위에 세웠다는 설명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와!"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서로의 위치를 바꾸어야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운동하게 된다.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서로 위치를 바꾸며 온도를 덥히기도 혹은 낮추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 땅은 아래에 하늘은 위에 두는 형태로 건축물을 짓기 마련인데, 이처럼 역동적인 세계의 운동법칙을 이미 그 오래전, 고조선 시대에 건축물에 반영하다니. 정말이지 놀라웠다. 그 옛날 고조선 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한참 상상하다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곱절은 몸에 무리가 가고 사고도 잦다고 해 더욱 신중해졌다. 방향을 바꾸어 산을 내려오다 보니 같은 길인데도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보는 풍경이 달랐다. "아까 이 길을 지나왔었어?" 라며 낯설어하다 일부러 다시 방향을 돌려 산 쪽을 바라보면 아까 그 길이 맞다. 같은 장소, 같은 일도 어떤 각도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정말 다른 풍경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게다가 산이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을 보여주었다. 안개가 걷힌 것이다. 어쩌면 그리 아름다울까? 산 아래로 반듯하게 선이 그어진 너른 들이 펼쳐지고, 그 들 너머로 바다가 이어졌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 산을 바라보니 물을 흠뻑 머금고 새로 자라나는 맑은 연둣빛이 한가득이다. 그 사이사이 분홍, 노랑의 꽃들이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연신 닦아내고 풀린 다리가 꺾여 휘청대면서도 '아, 정말이지 오길 잘했구나.' 남편에게 괜히 더 다정해졌다.


나로 말하자면 일주일 동안 운동이라고는 숨 쉬는 것 외에는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다. 등산을 자주 하는 사람들에게 마니산은 '하' 등급의 코스라고 한다. 완만하여 초보도 등반하기 적당한 산이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거의 기어서,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려서 겨우 정상에 올랐다 내려왔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 밖으로 달아나려는 듯 쿵쿵대는 심장을 달래 가며 남편의 손을 잡고 계속 걸었다.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 내가 대견하다. 잊을 수 없을 아름다운 풍광은 이처럼 대견한 나에게 산이 준 선물이지 싶다. 녹음이 더욱 짙어지는 계절이 오면 다시 한번 마니산을 올라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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