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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정 May 07. 2022

어린이 날 다시 생각하는 시흥시 출생확인증 조례 운동

50일 글쓰기 – 18

지난해인 2011년 경기 시흥시에서는 시흥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출생확인증 조례’를 제정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온 세상이 축복하는 어린이날, 실현되지 못하고 발걸음을 멈추어버린 출생확인증 조례운동을 다시 돌아본다.



시흥시 출생확인증 조례운동 공동대표단은 2021년 11월 30일 ‘시흥시 출생확인증 작성 및 발급에 관한 조례(이하 출생확인증 조례)’ 청구를 위한 2만2917명의 서명부를 시 행정부에 제출했다. 출생확인증 조례 제정을 위한 주민운동은 지방자치법 규정에 따라 8월26일부터 11월25일까지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 법정 청구요건인 8285명을 훌쩍 넘어 2만3000명에 달하는 시흥시민의 서명부를 제출한 것이다.


제출에 앞서 진행한 기자회견에는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이 기본적인 권리조차 평등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을 알게 되면서 서명운동에 적극 동참하여 출생확인증 조례가 꼭 발의될 수 있도록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서명에 참여한 시흥시민의 마음이 담겼다. 그리고 한국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이후 30년이 될 때까지 여전히 아동의 출생등록 될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시흥시부터 시작하는 보편적 아동권리 보장을 위한 시도와 노력이 다른 지자체 등으로도 널리 확산되길 바란다는 마음도 담겼다. 나 또한 개인적인 관심으로 작년 조례 제정을 위한 서명에 참여하였다. 조례 제정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조례에 담긴 내용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시민 발의로 진행된 조례 제정 사례였기 때문이다.



내가 23년째 살아가고 있는 시흥시는 근래 들어 새로 개발되는 택지를 중심으로 학교가 부족해 새로운 학교를 세워달라는 요구가 거세다. 반면, 작년 구도심에서는 중학교 하나가 폐교되고 '초중고 통합형 다문화국제학교'인 군서미래국제학교가 개교하기도 했다. 게다가 농어촌 지역이 포함되어 논밭과 바닷가 마을의 면적도 넓고, 공단 지역도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복잡하고 다채로운 도시인만큼 다양한 문화를 가진 구성원이 모여 살아가고 있다. 각자 처지가 달라 다양한 목소리들이 들린다. 그 와중에 ‘시흥시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누구나 환영받게 하고 함께 돌보자’라는 취지로 조례 제정을 추진한 것은 이처럼 다양한 이해관계들 사이에서 얻어낸 소중한 공동의 목소리였기에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아동 인권에 관한 시민적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뜻으로 생각되었다. 우리 사회는 낮은 출산율로 나라가 사라질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여전히 어떤 아동들은 자격 미달이라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그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이중잣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었고 존재를 드러낼 수 없는 아동의 인권과 해결책을 고민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의 주도로 법 제정이 진행된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스스로 발의하고 서명하여 마련한 조례안이었기에, 지방자치시대를 선도한다는 자긍심도 컸다. 제도와 절차가 마련되었다 하더라도 결국 생활 속에서 그 내용과 정신을 채워나가는 것은 사람이다.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고 있어도 실제 지역에 필요한 일들을 스스로 찾아내고 해결해가려는 사람들이 없다면 죽은 제도가 되기 마련이다. 2012년 유엔에서 권고한 ‘출생통보제’가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시흥에서 주민들 움직임으로 지방자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움직임에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시흥시의회 사무국은 2022년 4월 5일 공식입장을 통해 "출생 정보를 기록, 관리하고 이를 증명하는 출생확인증 발급은 전국적으로 통일적인 처리가 요구되는 국가사무에 관해 조례를 제정하는 것으로 지방자치법 제22조에 반할 소지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른 출생신고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의료기관의 출생통보의무 및 시·읍·면 장의 직권 출생기록 의무를 신설하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이 입법 예고됐다"고 밝히며 조례 제정을 연기했다.



안타깝다. 출생확인증 조례가 시행되지 못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 어른들에게는 시흥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가 보호받고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어린이날이다. 미래의 희망이라는 어린이들의 날이다. 세상 모든 어린이들의 날, 어린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토대가 될 출생확인증 조례안 제정을 다시 한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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