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꼭 공부해야 하나요?
50일 글쓰기 - 26
아이들과 함께 50일 글쓰기를 하다 보니, 올라오는 글에 담긴 아이들의 이런저런 고민에 늘 마음이 머물게 된다. 며칠 전에는 중 1 한나가 수학 공부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동안은 공부량이 부족해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생각에 자책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자신의 진로와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왜 이토록 많은 시간을 할애해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을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표현하는 걸 보니, 여전히 수학에 관한 고민이 정리되지 않고 있구나 싶다. 글을 읽고 며칠간 나에게도 수학에 관한 질문이 따라다녔다. 50일 글쓰기에 나름의 답을 담고 싶은 욕심에 글을 쓰지도 못하고 며칠이 훌쩍 지나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오늘 다른 중 1 아이들과 ‘어떤 것을 과학이라고 할까?’라는 주제로 수업을 하다가 수학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과학자처럼 생각하기’를 함께 읽기 전에 평소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을 점검해보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증명할 수 있어야 해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많은 사람이 인정해야 해요.” 등등 나름의 생각을 풀어놓았다. “그럼, 현재 과학기술로는 재현하지 못하는 경우는 과학이 아닌가?” “눈으로 볼 수 있게 재현이 안되더라도 이론적으로 증명이 되면 과학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이론적으로 증명이 되는데?” “예를 들면요, 수학 공식이나 컴퓨터 시뮬레이션 같은 걸로 증명할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 수학은 과학자들이 세운 가설들을 입증하고 구현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그래서 과학자 특히 공학자들에게는 수학이 필요하겠구나. “그래서 많은 학문들이 실제 구현이 되려면 수학이 필요하겠다, 그지?” 아이들이 끄덕끄덕한다.
“그럼, 많은 사람이 인정하면, 예를 들어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도 과학이 될 수 있겠네?” “그건 아니죠!” “왜?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데?” “그건 약간 종교처럼 그냥 믿는 거죠. 우주에서 사진 찍었다고 하는데도 음모론이라고 그냥 무시하잖아요.” “그럼 반론이나 비판이 제기되어도 다시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건 종교처럼 믿음이 되는 거구나?” “그런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아이들과 ‘칼 포퍼’와 ‘토마스 쿤’에 관해 짧은 자료를 읽고 ‘과학은 반증 가능해야 한다.’라는 것과 ‘과학의 발전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믿음의 체계를 가리키는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혁명적으로 일어난다.’라는 주장들에 관해 살펴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람의 심리에 관해 연구하는 심리학도 그렇고, 역사학도 그렇고, 인류학도 그렇고 경영학도 그렇고... 나름 문과 계통이라고 하는 학문들도 ‘수학’의 도움이 필요하겠구나.” “심리학 하는데 수학이 왜 필요해요?” “너희들 좋아하는 MBTI 같은 것도 다 통계잖니. 통계도 수학이니까.” “와, 그럼 수학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거네요? 망했다.” 호준이 한마디에 애들이 저마다 비명을 지른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고등 수학까지 다 배워야 하는 현실이 무척 안타깝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적어도 중학교까지 배우는 수학은 우리가 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사고하도록 돕는다고 생각한다. 수학적, 과학적으로 사고한다는 뜻은 아이들이 이야기한 대로 맹목적으로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증명하고 혹은 증거들을 모아 결론을 도출하려 애쓴다는 뜻이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현재 시점의 패러다임에 의해 합의된 믿음이라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그래서 누군가 반론을 제기하고 다시 그 반론을 제기하면 수정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그 내용을 기꺼이 수용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는 의미다. 게다가 수학적, 과학적으로 사고한다는 뜻은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과 사물을 세밀히 관찰하고 공통점을 찾아 분류, 비교, 대조할 줄 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보다 폭넓게 이해하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물론 생각하는 방식을 배우느라 수학을 100점 받을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 그저 즐기면서 배우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