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 글쓰기 - 28
지난 일요일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다. 다음 주 현장학습을 갈 예정이라 답사를 다녀왔다. 시간 내기가 너무 어려워 몇 번 다녀온 짬밥으로 답사 없이 진행할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참이었다. 그런데 마침 5월 초에 미리 다녀온 선생님께서 삼국시대 관이 재정비되었으니 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정보를 주셨다. 그래서 미루다 미루다 수업 일주일 전이되어서야 부랴부랴 박물관을 찾았다.
어찌나 현장학습 나온 팀이 많던지, 다음 주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여하튼 혼자 구석구석 돌아보고 있던 중,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아들과 70 가량으로 짐작되는 어머니가 유리 너머로 전시된 칼들을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 중이셨다.
"청동은 이렇게 울퉁불퉁하지 않다니까! 쇠들이 녹슬면서 이렇게 울퉁불퉁해지는데."
"엄마, 무슨 소리셔. 아직은 철이 들어오기 전이라니까. "
"이상하네. 청동은 오래되어도 매끈한 편인데."
"엄마는 뭘 자꾸 그렇게 고집을 부리셔요."
순간, '응? 여기가 부여관 아니었나? 부여면 철기를 사용했을 텐데.' 하며 안내판을 다시 확인했다. 안경을 쓰지 않아 안내판에 코를 박고서야 글이 보인다.
'IRON. 엥? 어머니 말씀이 맞는데?'
내가 쳐다보는 눈빛이 느껴졌는지, 아들도 그제야 안내판을 확인한다. 그리고 자리를 옮기며 말한다.
"아이고, 알았어요. 엄마. 엄마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철을 쓰기도 했다네."
이런, 엄마 앞에서도 자존심이 상하는 건가. 맞을지도 모른다니, 참.
그나저나 할머니, 대단하시다.
관찰만으로 청동과 철기를 구분해 알고 계시다니.
생각해보면 우리 어머니들은 모두 관찰의 대가들이셨다.
산에 핀 나뭇잎이 변하는 모습만 보고도 시간과 계절, 날씨까지 알아내시곤 하니 말이다. 새로운 일을 접하면 한참을 계속 바라보시던 시어머님이 떠올랐다. 배움의 기회가 귀했던 시대, 어머님께서 스스로 익힌 세상을 배우는 방식이었다. 때로는 문자나 책으로 배우는 것보다 몸으로 배우는 것이 훨씬 견고할 때가 있다. 괜스레 코끝이 시큰해 나도 혼자서 한참을 더 들여다보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