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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정 May 25. 2022

서로 기대어 살아가기

50일  -글쓰기 -29

6평 남짓한 텃밭에 이것저것 여름까지 먹을거리들을 심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들러 물을 듬뿍 주고 잘 자라라 한 마디씩 하고 올뿐인데도, 어찌나 무성히 잘 크고 있는지 우리 부부에게는 큰 기쁨이 되고 있다. 지난 일요일에 들러 토마토 줄기를 묶어둔 끈을 다시 묶고 무성히 올라온 시금치도 솎아냈다. 알타리는 굵어진 놈들로만 쏙쏙 뽑고 쑥갓과 상추도 듬뿍 수확했다. 그날 담은 총각김치가 벌써 맛이 들어 아이들이 잘 먹고 있다.


올해는 오이 모종을 네 포기 심었다. 몇 년 텃밭을 하다 보니 한창 더운 여름에는 잘 열리고 따먹기 좋은 오이만 한 것이 없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그런데 분명 같은 날 비슷한 크기 모종을 심었는데, 그날 보니 한 포기가 유난히 잘 자라고 있었다. 남편이 지난번에 왔을 때 덩굴손을 지지대에 걸쳐준 것이다. 이불 꿰매는 굵은 명주실 정도 두께밖에 안되는데도, 세상에 어쩜 그리 단단하게 붙잡고 일어섰을까. 지지대에 기대어 다른 모종보다 한 뼘은 더 높이 자랐다. 잎은 빛깔도 더 짙고 크기도 더 크다.


오이에 물을 주며 보고 있자니, 문득 식물이든 사람이든 기댈 곳이 있어야 하는구나 싶다. 조금만 지나면 수많은 덩굴손으로 씩씩하게 자랄 오이다. 그런데 바로 딱 저 순간, 기댈 곳이 있다면, 쓰러져 가던 오이도 살아난다. 이제 막 줄기를 키우기 시작하던 오이는 더 푸르게 더 튼실하게 자란다. 나에게도 기댈 곳이 있나? 나는 누군가 필요한 순간 지지대가 되어줄 준비가 되어 있나? 몇몇 얼굴들이 마치 보름달처럼 두둥실 떠오른다. 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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