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현정 Jan 30. 2023

버리지 못하는 신발들 2

버리지 못한 신발들 1에 이어...



“와, 이 동네 도대체 얼마만이고?”

“언니야, 좀 천천히 가라!”

그녀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부산을 떠났어. 오랜만에 부산을 찾은 그녀는 우연히 어릴 적 살던 동네를 지나던 길이었지. 예정에 없었는데 여동생과 마음이 맞았는지 갑작스레 차에서 내리더라고.

“야, 슈퍼도 그대로 있다. 웬일이고?”

“진짜 심부름도 많이 다녔는데, 저기가 석유집이고 그 옆이 쌀집 맞재?”

“맞다 맞다. 여기가 OOO이네 집 아이가? 니도 그동안 한 번도 안 와봤나?”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동생은 자신도 처음 와본다며 연신 감탄사를 터뜨리며 주위를 둘러봤고.

“와~ 공터도 그대로네.”

“언니야. 여기다 엄마가 시금치도 심고 했는데 맞재?”

“그래, 맞다. 여기다 빨래도 널었다이가.”

길이 이렇게 좁았냐, 산이 이렇게 가깝게 있었냐, 여기 살던 친구가 뭘 하며 산다는 둥 둘이 더듬더듬 기억을 따라 다정히 걸어가더니, 갑자기 걸음을 뚝 멈추는 거야. 난 바닥에 놓인 작은 돌에 걸려 휘청할 뻔했다니까. 비포장도로였거든.


“세상에! 이 집이 그대로 있네.”

“언니야. 벽 색깔도 그대로다!”

“그러게. 잠깐 들어가 봐도 될라나?”

두 여자는 대문에 서서 안을 기웃거렸어. 누가 볼까 나는 좀 부끄러워 주변을 살폈지.

“문이 잠겨있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도둑인 줄 알겠다.”

“뒷담 쪽으로 가볼까?”

둘은 앞으로 뒤로 오가며 마당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려 애를 썼어. 그렇지만 도통 볼 수가 있어야지. 다시 문 앞으로 온 그녀는 굳게 닫힌 문틈으로 한 번 더 눈을 대보더라. 그렇게 한 오분쯤 있었을까? 도저히 안 되겠는지 아쉬운 한숨을 토해내며 돌아서더라고. 사실 갑작스럽게 차에서 내린 나는 종종걸음 치는 여자 탓에 앞코와 뒷굽이 약간 까지고 먼지까지 뒤집어쓰는 바람에 기분이 썩 좋진 않았어. 하지만 구두는 아랑곳없이 열댓 걸음 떨어져서까지 자꾸만 뒤돌아서 집안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어찌나 구슬프던지, 나도 따라 슬퍼졌다니까.


그날 밤 그녀는 나를 닦으며 한참을 앉아 있었어. 그리고 이런저런 넋두리를 늘어놓았단다.

“세상에, 그 집이 아직 그렇게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그리곤 벗겨진 내 코를 조심스레 닦았어.

“난 그 집에서 살았던 시간이 참 좋았거든. 일곱 식구가 다리도 뻗기 힘든 좁은 방, 늘 떨어지는 쌀, 날마다 되풀이되는 다툼들... 그때는 지긋지긋하다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돌아보면 그런 건 사실 부모님의 몫이었나 봐. 싸우고 돌아서서도 한 상에서 밥을 먹고 한방에서 잠을 자고, 외상으로 사 온 재료로 저녁을 해 먹어도 맛만 좋았고 빚쟁이가 찾아와 엄마가 없다고 버젓이 거짓말을 하면서 잠시 불안해도 바로 다 잊어버리고 친구들과 살구 받기를 하러 뛰어 나가곤 했으니까.”

갑자기 조용해져 그녀를 흘낏 봤어. 그녀는 허공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더라.

“근데, 오늘 그 집을 보는데... 안도, 맞아. 안도. 안도감이 들었어. 나는 저곳을 빠져나왔구나. 지금도 이십여 년 전 나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 세상에, 내가 이런 상황에 안도하다니. 너무 한심하지 않니?”

한참 후 그녀는 다시 마른걸레로 나를 닦기 시작했어.

“가난은 불편할 뿐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말뿐이었던 걸까? 난 그 시절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밀어내고 싶었던 걸까? 그 순간 그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폄훼해 버린 내가 너무 부끄럽고 한심해 견딜 수가 없어.”

반짝거리는 내 얼굴에 비치는 그녀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

그녀는 가끔 나를 이렇게 꺼내두곤 해. 혹시나 날 고쳐서 다시 신어주지는 않을까 하고 기대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딱히 날 고쳐 신을 생각은 없나 봐. 너희들도 알다시피 구두는 거의 신지도 않고. 그렇지만, 오늘처럼 나를 꺼내놓는 날이면 난 혼자 생각하곤 한단다. 오늘은 또 왜 자신이 싫어졌을까? 오늘은 또 어떤 마음을 잃지 않으려 저렇게 애쓰는 것일까? 그래서 난 거울처럼 그녀의 얼굴을 비춰주려 애쓰며 이렇게 조용히 내 자리를 지키고 있단다.




난 괜히 얼굴이 화끈거려 구두를 바로 볼 수가 없었다. 낡은 구두 할머니는 그런 날 보며 빙그레 웃었다.

“날 신으려고 두는 것이 아니니 그녀를 너무 탓하지 마렴. 사실 나도 이젠 그만 나를 버리고 그녀의 마음이 가벼워졌으면 한단다.”

그리고 몸을 다시 가지런히 하며 눈을 감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

“너도 가만히 돌아보렴. 그녀가 너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었을 거란다. 너는 그냥 신이 아니라 그녀에게는 이야기일 테니 말이야. 그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오랫동안 그녀와 함께 하면 좋겠구나. 아무래도 나는 곧 이 집을 떠날 듯하니 말이야.”

나는 고개를 돌려 멀리 그녀를 향해 고개를 뻗어본다.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낡은 신발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씩 모으는 그녀. 나에게 그 이야기와 무게가 담겨있다니 흐물거리는 내 낡은 몸이 왠지 소중해진다. 다음 외출에는 그녀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을 무심히 흘려보내지 말아야지. 다시 앞으로 나아가도록 내 걸음에 담아봐야겠다. 나는, 낡았지만 소중하게 간직된 신발이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버리지 못하는 신발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