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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아 Feb 01. 2018

후회가 덜 한 삶

모두 같은 삶 중에서도.


그 날도 어김없이 녹초가 되어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자리가 듬성듬성 비어있었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없는 자리에 앉았다.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을 보거나 잠을 자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날보다도 훨씬 조용한 지하철 안의 분위기는 가라앉은 듯이 고요했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다가 듣던 노래가 지루해져 다른 음악을 고르던 중, 옆 옆자리에 앉은 중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40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정장 차림의 그 남자는 꽤나 침체된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대화 내용을 듣다 보니 어머니가 편찮으신 모양이었다. 짐작컨대 누이와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병원은 어디가 좋을지, 병세가 어느 정도인지, 앞으로 어머니를 어떻게 보필할 것인지 정도의 대화가 오가는 듯했다.


지난봄이 떠올랐다.

참으로 내게 가혹했던 2017년 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암투병에 우리 가족은 봄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른 체 길고도 짧은 봄을 보냈었다.

아빠는 늘 몸이 고장 난 상태였다. 자식들을 키워내느라, 엄마를 돌보느라 자신이 아픈 것은 지나쳐버리며 살아오셨던 아빠였기에, 돌연 심각한 병에 걸린 게 아니었기에 더 슬펐었다.

겨울이 끝나가는 2월에 아빠가 암이라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고 봄날이 한창인 5월에 아빠는 세상을 떠나셨다.

참 바쁘게도 떠나셨다. 우리가 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우리가 더 아파할 겨를도 없이 그렇게.  

암이 온몸에 퍼져가는 그 고통 속에서도 아빠는 참 많은 생각들을 하셨던 것 같다. 그때의 아빠를 보며 아빠의 어깨에 늘 짊어지고 있었던 그 짐들을 마지막까지도 놓지 못하셨을 거라는 걸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본인이 제일 아프면서도 우리가 아파하는 모습이 가여웠던 걸까? 아빠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삶이라는 것을 고이 내려놓고자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으셨었다. 그것만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을 것이다. 또는 자신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처연하지 않게, 늘 우리에게 보여주었듯 멀끔한 모습으로 남겨지길 바랬던 것 아닐까?


지난봄에 나는 늘 지하철 안에서 아무도 의식하지 않은 체 엉엉 울곤 했었다. 그때의 나에게 남을 의식할 정도의 의식은 없었다.

내가 옆 옆자리에 앉은 중년 남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 건 그 슬픔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고, 그 남자가 겪어야 할 슬픔과 아픔들은 오롯이 내 것과도 같은 것이라 느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모두 태어나고 죽는다.

하지만 나를 한 평생 돌봐준 부모님과 이별하는 것을 태어나고 죽고의 문제와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이기란 힘에 겹다. 아직은 어린 나도 그렇고 중년이 되어 세상을 살만큼 살았다 할 나이임에도 다를 것이 없는 것처럼.

언젠간 부모님과의 이별은 온다. 멀리, 혹은 가까이.

멀리가 되었든 가까이가 되었든 간에 부모님과의 이별은, 인간에게 신이 준 가장 가혹한 벌이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커다란 존재인가를 그제야 안다. 부모가 떠나고 나서야 더 절절히 느끼게 된다.

곁에 있을 때 잘하라는 어른들의 말은 어쩌면 신이 건넨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을 늘 알면서도 모른 체 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해야 한다. 후회가 없는 과거와 미래는 없지만 후회가 덜 한 과거와 미래는 늘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늘 배우며 살아간다.

그 깨달음을 행할 때 비로소 후회가 덜 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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