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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아 Mar 11. 2018

내일도 지하철을 잘못 타야겠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늘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채로 다닌다.

좋게 말하면 무념무상이 되는 시간이고 나쁘게 말하면 정신을 놓고 다니는 시간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정신을 놓고 멍해져 가고 있었다.

서늘한 기운에 눈을 치켜떠보니 다음 역은 개봉역이었다.

나는 인천에 살지 않는다. 고로 오늘도 지하철을 잘못 탄 것이다.

깨나 비일비재한 일이라 소스라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스스로 혀를 끌끌 차기는 했다.

'또. 역시나. 이쯤이면 꽤 오랫동안 잘못 타지 않았지 뭐...'


황급히 다음 역에 내려 차가운 바깥공기를 한 움큼 마시고 머릿속을 환기한다.

머리를 식힌 것인지 마음을 식힌 것인지, 참 시원도 하다.

낯선 역에 내려서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지하철을 타러 발걸음을 천천히 옮긴다.

최대한 느릿하게 눈걸음도 옮겨본다.

낯선 풍경을 유유히 훑는 눈걸음을 따라 원래는 보지 못했을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거기에는 처음 가 본 놀이동산처럼 익숙지 않은 풍경들이 가득했다.

낯선 조명과 낯선 가로수가 주는 신선함은 은근히도 마음에 들었다.


매일 걷는 익숙한 곳은 마음의 안정을 주지만 내 곁을 스치는 계절의 순간조차 알아차릴 수 없게, 그렇게 나의 눈을 가려버린다.

매일 걷던 길이었다면 이 계절이 나부끼는 순간을 놓칠 뻔했다.

오늘도 지하철을 잘못 타길 잘했다.

내일도 지하철을 잘못 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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