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담양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서 아니, 어쩌면 일부러 여유를 만들었다고 하는게 맞을 것 같은 시간을 만들었어.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곳, 아무도 나를 기대하지 않는 곳에 오고 싶었거든.
지금의 나에게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것 같아. 누군가의 무엇이 되고, 무엇이 되어서 나보다 남을 먼저 챙겨야하기도 한...?
나를 잃어버리는 시간속을 지나서 삶의 절반의 절반도 안남았을 때 나를 다시 찾아헤매는 그런 거.
사실 요즘 사람들이 시간을 잃어버리는 모습이 자꾸 눈에 띄어서 무서운 마음에 여기로 도망친거야.
지금의 나에게서 될 수 있는 한 먼 곳으로.
눈을 휴대폰에 두고서도 저절로 걸어지는 곳 말고, 매일 아침 보이는 똑같은 풍경말고 내가 좀 바짝 쫄아서 온 신경을 여기 지금 이 순간에만 둘 수 있는 곳에 말이야.
하루종일 내리는 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눅눅한 체로 내 등짝을 다 가리는 백팩을 짊어지고 걸어다녔어.
짐도 두 손 가득인데 우산도 들어야해서 정말 핸드폰도 들여다보지 못하겠더라.
나름 분주했던 하루를 보내고 숙소즈음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정류장 맞은 편 나무아래에 서계시는거야.
아침에 전화로 몇시에 버스가 있으니 그거 타고 오면 마중나와 있으시겠다고 했는데 정말 나와계시더라고.
내가 그 버스를 타고 오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처음보는 나를 마중나와 준 아주머니가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어.
생각지도 않은 배려에 오히려 마음이 시릴때가 있어.
나의 텅 비어버린 마음에 누군가 따듯한 바람을 불어넣어주면 마음은 물론 발가락 끝까지 온도가 올라가는 기분이 들 때, 우리는 가끔 그 배려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소나기를 만난 것 처럼 우산없이 비를 맞딱들여.
비에 젖어 시린 밤이 바로 오늘 인 것 같아.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내민 작은 손에 고마워 어쩔 줄 모르는 내가,
나에게 전부인 존재에게는 얼마나 야박했던지.
결국엔 나도 나를 잃어버리는 시간속을 지나겠지만 너를 잃어버리지는 말자고 다짐하는 이 밤을 지나 너에게 다시 돌아갈게. 내일 보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