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어느 낙엽처럼 바스러져 버렸던 날이 있다.
물기가 모두 날아간 지 오래고 먼지가 쌓인 잔처럼,
원래의 투명함을 잃고 먼지에 덮여 서걱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은 내가 있었다.
다시는 감정 따위를 느끼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바래버리는 감정 따위일랑 느끼고 싶지 않았다.
길 위에 흐르는 노래에 고개를 떨구고 스치는 바람에 그리움이 묻어나는 시간들이 너무 힘에 겨웠으니까.
좋아했던만큼 잊는다는 것이 몇 겹이나 힘이 든다는 걸 알겠던 그 날에
모든 기억을 흩뿌렸다.
장미가 넝쿨째 피어나는 계절이다.
청색의 밤하늘에 녹음이 비치는 계절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의 계절이 또다시 누군가의 계절이 되어간다.
여름냄새가 은근하게 퍼지는 오늘,
누군가의 여름 속에 들어갈 채비를 하는 내가 익숙하고 낯선 오늘,
장미가 넝쿨째 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