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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아 Apr 16. 2018

수덕사의 새벽하늘을 당신에게 선물하고싶다

충남예산 수덕사 템플스테이


템플스테이를 가게된 건 형부의 제안이었다.

언니와 함께 절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오는게 어떻겠냐고.

마침 나 자신에게 정비가 필요하던터라 단번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번쯤은 템플스테이를 체험해보고싶다 생각하곤 했는데 기회가 없었던건지 간절함이 없었던건지 무언가가 없었기에 가보지못했던 것 같다.


한시간반쯤을 달려 도착한 수덕사는 벚꽃으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사람이 반, 벚꽃이 반이라는 여의도 벚꽃길에 비해 소박한  정도였지만 사찰의 벚꽃은 훨씬 잔잔하게,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템플스테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따라 걸으니 백운당이라는 건물 한 채가 나왔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백운당에 묵는 사람은 언니와 나 둘뿐이었다.

우리는 템플스테이 두가지 프로그램 중에 ‘일 없는 일’(휴식형)을 선택했기때문에 그냥 휴식이나 산책정도를 하면 되었다. 밥이 먹고싶으면 공양시간 10분전에 공양실로 가서 밥을 퍼담으면 되고 절의 의식을 따르고 싶으면 예불시간을 지켜 대웅전으로 가면 되었다.

언니와 절복으로  갈아입고 난 뒤 예불시간이 멀었기에 정혜사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정혜사까지 가는 길은 꽤 가파라서 중간중간 아무 나무밑에 앉아서 쉬었다가기를 반복했다.

흐른 땀이 산바람에 식으면 다시 가던 길을 갔고 마음에 드는 봄꽃을 마주하면 사진으로 그 순간과 함께 찍어두었다.

삼십분정도를 걸어올라가니 정혜사에 도착했다.  스님들이 공부중이라 사찰 안쪽을 구경할 순 없었지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예산의 봄을 마음에 담고나니 조금의 아쉬움도 남지않았다.

오를 땐 끝이 없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도착했다.

처음가보는 길이라 낯설어도 같이 걸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 두려움이 반이 되었고 도착했을 때의 기쁨은 두배가 되었다.


정혜사에서 내려올 땐 올라왔던 콘크리트길이 아닌 산길로 걸어내려왔다.

누군가 먼저 걸었기에 길이 되었을 길.

길이 나있긴하지만 험한 편이라 두 다리에 힘을 한껏 싣고 걸어야했다. 서로의 안부를 걱정해주며 언니가 먼저 걸으면 내가 뒤를 따라걸었다.  멀리를 내다볼 겨를이 없이 발끝만 보고 걸어야했다. 자칫 발을 잘못디디면 굴러떨어질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위험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다 내려와서 언니가 말했다.

앞만 보며 걸었더니 어느새 도착했다고, 그 말을 들으니 꼭 멀리를 보고 살아야만 잘 살아왔다고 말할 순 없겠구나 싶었다. 멀리를 내다보느라 내 바로 앞에 있는 행복을 보지 못할 수도 있고 먼 미래의 무엇보다 지금의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조금 쉬다보니 저녁예불시간이 되어서 대웅전으로 갔다.

모든 절에 들어서면 세번 절을 해야한다. 엎드렸다가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한 다음 다시 땅을 짚고 일어난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절에 머무는동안 점차 자세도 나아지고 덜 휘청거리게 되었다.


예불시간이 거의 다되자 한 스님이 사찰의 한켠에있는 큰 북을 치기 시작했다.

일정한 소리로 수덕사를 가득 메우는 북소리를 듣고있으니 마음이 다림질되는 기분이 들었다.

예불 시작전에 북을 왜 치는건지 여쭤보고싶었으나 번뇌를 가라앉게 만들기위함이 아닐까라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접어두고 수덕사에서의 첫 예불을 드렸다.

첫 예불때는 잡생각을 하느라고 뭔가 집중이 잘 되지않았다. 신성한 곳에서 잡생각을 하고있는 내가 싫어서 예불이 끝나기 무섭게 대웅전을 빠져나왔다. 대웅전에서 나와 괜히 벚나무 밑을 조금 서성거리다 공양실로 향했다.


낮에 정혜사에 다녀온 이 후로 계속 뱃속이 휑하다고 아우성이었는데 드디어 공양시간이 되었다.

공양중에는 말을 삼가야하는데, 일단 소리없는 식사시간이 좋았고 불필요한 조미료를 넣지않아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는 음식들을 먹으니 밥맛이 좋아 매 끼니마다 두공기씩을 먹은 것 같다.


절에서는 저녁9시가 되면 잠자리에 들기위해 소등한다고 했다. 새벽3시30분에는 예불이 있다고 하였다. 예불을 드릴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누군가의 강요없이 나 스스로 지키면 되는 것들은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새벽예불에 꼭 가고싶었다.


9시가 되기 전에 언니랑 짧게 산책을 다녀온 뒤 방으로 돌아와 핸드폰을 잠시 꺼두고 누웠다.

저녁9시에 잠자리에 누워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만큼 오래된 것이 새삼스러웠다.

새벽3시에 일어나 무언가를 한 적은 있던가?

3시에 일어나 백운당을 나서니 어딘가에서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부터 일어나서 목탁을 두들기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고 대웅전으로 가는 길, 새벽하늘에 선명하게 빛나는 수 많은 별과 소나무 어귀에 걸린 달을 보았다.

‘내가 이 이른 새벽에 산사에 있다니!’

새벽바람은 참, 깨끗도 하였다. 아무도 밟지않은 눈길처럼 깨끗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예불을 드리는데 어제 오늘 중 가장 정신이 맑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말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후회조차 하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질만큼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시간이다.

날이 밝으면 언니랑 108배를 하기로하고 다시 잠들었다.  

108배는 중생의 번뇌가 108가지라는데서 유래되었으며, 마음을 비우기위한 불교의 수행법이라고 한다.

108배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숫자를 세다보니 아무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최대한 정성스럽게 해야겠단 생각만이 몸을 움직였다.

108배가 끝나고 대웅전에 앉아 숨을 고르는데 바깥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몸을 열심히 움직인 후에 맞는 산바람은 다리의 욱신거림을 잊게 만들었다.

가끔 마음이 힘들때 108배를 해야겠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1박2일의 짧지만 잊을 수 없는 템플스테이가 끝나고 계절마다 템플스테이 해보기가 버킷리스트에 추가되었다.  

매화꽃향기에 가던 발길을 멈추는 수덕사의 봄을 지내고오니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은 또 어떨지 기대가 된다.


당신이 나처럼 우연히라도 수덕사를 걷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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