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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Hong Jan 15. 2024

B2B 영업, 고래냐 멸치 떼냐

일을 버려라

B2B 영업에서 오랜 세월 동안 내려온 원칙이 있다. "큰 기업을 잡아라. 그러면 작은 기업은 따라온다. " 내가 일하는 변리사 업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근무하던 사무소에서 클라이언트이던 대기업의 일거리는 따오지 않으면 개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말들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것 같다. 얼마 나는 후배 변리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기업 클라이언트를 갖고 있는 사무소의 파트너 변리사가 제일 혹사 당하고 있다. 아마 그런 분들이 중기업/소기업 고객 위주로 경영하는 특허 사무소 실적을 보면 까물어칠 거다". 이러한 생각은 책, "일을 버려라"를 읽으며 정리되었다.

37 signal(베이스캠프)의 철학

"일을 버려라"는  베이스 캠프, Ruby on Rails로 유명한 37 signal의 CEO가 지은 책이다. 책 제목만큼 도발적인 내용이 많다. 

    - 미친 듯이 근무하는 것이 답이 아니다. 

    - 8시간은 충분하고, 40시간은 대단히 많은 시간이다. 

    - 업무 평가 없이 업계 상위 10%의 해당하는 연봉을 직원의 연봉으로 책정한다. 

    - 1년에 한 달을 유급 휴가로 보장하고, 휴가 경비를 추가로 제공한다.

언뜻 보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논리적이 않아 보이지만 나름의 논리가 있다. 또한, 실제로 이런 철학을 지키며  1999년 창업해 20년째 흑자이고, 연 매출 2000억을 내는 회사를 70명의 인력으로 운영하고 있다. 37 냐signal의 CEO는 이렇게 말한다.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고객은 최악의 고객이다. 그 큰 고래는 당신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고 만족스럽지 않다는 암시만으로도 당신의 신경을 너덜너덜하게 만든다. 이런 고객은 늦은 잠에도 당신을 깨어 있게 만든다."


한 번의 영업 비용으로 획득 가능한 매출과 유지

거대 고객일 수록 한 번의 영업 비용으로 큰 매출이 확보된다. 또한, 거대 고객이 확보되면 이를 레퍼런스로 삼아 홍보할 수 있다. 따라서 작은 고객 여러 개를 유치하려 애쓰기 보다는 커다란 고객 하나를 유치하는 것이 빠른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기존의 이론이다. B2B 마케팅에 관한 고전인 "케즘 마케팅"이나 스타트업 성장에 관한 스탠포드 대학에서 Y Combinator가 진행하는 강의인 "How to start a startup"에서도 모두 같은 장점을 이야기한다. 다만, 여기서 간과된 것들이 있다. 바로 유지 비용이다.


유지비가 많이 드는 대형 고객

거대 고객일 수록 주도권은 거대 고객에게 있다. 거대 고객의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을 갖고 있고, 그 시스템에 맞추길 기대한다. 예를 들면, 리포트 형식, 전용 커뮤니케이션 채널, 부가 기능이다. 또한, 본인들의 요구가 받아들여 지지 않는 경우 경쟁사로 떠날 준비를 한다. 이는 고객 유지 비용을 상승하게 한다. 분명 우리는 SaaS 회사인데, 자고 일어나니 SI 회사가 되어있더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다. 소규모 고객은 기존에 갖고 있는 시스템이 없거나 열악하기 때문에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나 상품에 맞추는 걸 꺼려하지 않는다. 또한, 오히려 그러한 시스템을 제공해주는데 고마워한다. 여기에 소규모 고객들이 갖는 단점이 작아지고 있다.


줄어드는 소규모 고객 획득 비용 및 커뮤니케이션 비용

대규모 소규모 고객을 갖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역시 영업 비용이었다. 그런데, SNS 마케팅, 타겟 광고 등은 이 비용을 급격히 낮추었다. 또한, 메신저, 홈페이지 등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소규모 고객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비용도 낮추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대규모의 소규모 고객을 관리하는 부담이 많이 줄어든다. 포츈 500대 기업이 아니라  포츈 5,000,000대 기업이 목표 고객이라는 베이스 캠프의 전략은 이런 배경하에서 효율적일 수 있다. 물론, 항상 다수중소 고객이 답은 아니다.


그럼에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경쟁 우위 포인트

그럼에도 내가 개업을 한다면, 나는 쉽사리 다수의 중소 고객을 선택하지는 못할 것 같다. 변리사 업계에서도 앞서 설명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국내 출원뿐만 아니라 많은 해외출원과 대량의 사건을 의뢰하므로, 한 번의 사건 수임으로 얻을 수 있는 미래 수익은 높다. 다만, 잦은 오프라인 면담을 요구한다. 또한, 10~20년점 수가를 유지하면서도, 높은 품질을 유지하길 원한다. 여기에 자신들의 시스템에 맞추어 보고 체계가 이루어지길 원한다. 반면, 중, 소규모의 기업들은 사무소가 제공하는 보고 체계와 시스템에 맞추며, 특수한 요구를 추가로 하지 않는다. 또한, 수가 인상에 대해서도 오히려 너그러운 입장을 보일 때가 많다.


다만, 대기업 고객은 품질의 차이를 알아 볼 수 있다. 대기업은 본인들이 90점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을 99~100점으로 만들어 줄 서비스를 찾는 것이고, 소규모의 고객들은 0에서 80~90점으로 만들어 줄 서비스를 찾는 것이다. 따라서 99~100점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대기업 시장에서는 경쟁 우위가 있지만, 중소기업 시장에서는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장기간 표준특허라는 특수한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고, 해당 분야의 다양한 경험이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경쟁 우위를 갖지 못하는 다수의 중소기업을 타겟으로 선택할 수 없다.


결국, 고객 획득 비용, 유지 비용, 경쟁 우위가 되는 강점을 생각하여, 고래를 잡을 지 멸치 떼를 잡을 지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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