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의 과학
나는 작년 말에 더 현대 서울의 '파이브 가이즈' 매장에 방문했다. 테이블링을 이용해 웨이팅 예약을 하고, 알림을 받고 매장에 갔다. 매장에서 다시 20분정도 줄을 선 뒤 비로서 버거를 주문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유쾌하지 않았다. 일단, 매장이 매우 붐비는 만큼 주문을 접수하는 직원 분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생각치 못한 옵션들이 많아, 원하는 옵션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다시 답을 하는 과정이 원활 하지 못했다. 이미 붐비는 인파와 끊임없는 주문으로 인해 피곤한 건지, 옵션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직원 분의 짜증 섞인 표정과 목소리는 나의 불쾌감을 더 해주었다. 매장 이용 후 이에 대해 항의 메일을 보냈고, 매장 담당 매니저분으부터 서비스 교육에 더욱 힘쓰겠다는 답 메일을 받았다. 다만, 나는 이러한 불쾌한 경험이 단지 직원 한 명의 불성실이나 태도가 원인이라 보지 않는다. 서비스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쇼핑의 과학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힌트를 준다.
소비자의 행동에 관찰이 매출을 올리기 위한 힌트를 준다
매장에서 소비자에 대한 행동을 관찰하고, 소비자가 구매를 포기하게 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면 매출 높일 수 있다. 지금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70년대말, 80년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를 받아들이는 기업은 많지 않았다. 쇼핑의 과학의 저자인, 파코 언더힐은 비디오 테이프로 소비자의 행동을 기록하고, 소비자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직원들로부터 수집한 정보를 이용해 매장 설계를 개선하는 컨설팅의 선구자이다. 파코 언더힐이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많은 매장이 인간의 공통된 특징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공통된 특징을 잊지 마라
인간의 공통된 특징을 무시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소비자의 이탈을 막을 수 있다. 먼저, 매장의 입구는 주목 받기 힘들다. 사람들은 매장 입구에서 다른 사람의 출입을 방해하는 것을 원치않으며, 조금 더 편안한 곳으로 빨리 이동하려 한다. 따라서 입구 바로 앞에 놓인 광고 선전판이나, 매장의 물건은 소비자의 주목을 받기 힘들다. 만약 집중적으로 판매하고 싶은 상품이나 알리고 싶은 광고가 있다면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 시켜야 한다.
또한, 주요 고객층의 시선과 팔이 닫는 범위를 파악하여 상품을 진열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주목 받기 원하는 상품은 당연히 아이들이 눈높이 맞추어 진열해야 하고, 고연령층이 주로 찾는 상품은 과도하게 허리를 숙이지 않는 곳에 위치 시켜야 한다.
구매자뿐만 아니라 동행자에 주목하라
동행자를 편하게 하면, 구매자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다. 여성을 주고객층으로 하는 매장에서 남성을 위한 휴식 공간을 마련하는 것 만으로도 여성 고객을 조금 더 매장에 머무르게 할 수 있다. 작은 휴식 공간만으로도 남성이 아내나 여자친구의 쇼핑을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매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여성 고객의 구매 확률은 늘어난다. 또한, 가족 고객 또는 아이를 가진 부모가 주요 소비자 층이라면 아이들이 놀기 좋은 공간이 필요하다. 비슷한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이라면, 부모는 조금이라도 편하게 아이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매장을 선택할 것이다. 볼풀, 트램펄린 이나 게임기를 비치한 음식점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있는 백화점이 좋은 예이다. 현재의 주고객뿐만 아니라 새롭게 등장하는 고객층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소비자 층의 변화를 감지하라
새롭게 떠오르는 소비자 층을 주목하고, 그들을 위한 제품 포장, 제품 분류 등 판매 계획 설계가 필요하다. 책에서드는 예시로 빅토리아시크릿과 같이 남성 고객이 선물용으로 구입하는 여성 속옷이라면, 남성 고객을 위한 명확하고 쉬운 사이즈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또한, 여성 고객이 늘어나는 공구 매장이라면 매장 인테리어와 제품 포장이 조금 더 친절하고 깔끔해질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이러한 것은 남녀 차이뿐만 아니라 매니아층에서 초심자 층으로 구매자 층이 변경할 때도 적용가능해 보인다.
매니아가 아닌, 초심자 층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상품에 대한 선택 구조는 단순하고, 설명은 명확하게 변경해야 한다. 개인 카페의 스페셜티 원두 커피 시장은 한동안 매니아를 위한 시장이었다. 요즘은 스타벅스와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에 질려, 새로운 원두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기존의 원두 테이스팅 노트는 너무 많은 정보를 정확하게 다루려다 보니 대중들에게 어렵게 느껴졌다.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imi 커피, 다과 상사에서 나타고 있다. 이들은 산딸기, 허쉬초콜릿 레몬과 같이 직관적이고 강렬한 단어를 사용하여 원두의 특징을 설명한다. 이러한 노력은 홈카페를 위해 원두를 구입하는 초심자에게도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또한, 노년층 소비자가 늘어나는 매장이라면, 폰트 크기를 늘리고 지나치게 많은 계단이나 장애물이 있는지 체크해보아야 한다. 슈카가 이야기 하듯 지금 일반적인 폰트 크기로는 노년층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줄을 서고, 주문을 기다리는 시간도 놓치지 마라
내가 더 현대 서울 '파이브 가이즈' 매장에서 분노할 수 밖에 없던 것은 약 20~30여분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메뉴판에 기재된 내용 이외에는 추가적인 정보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줄을 서면서 점원과 나눈 대화 내용은 테이블링을 통해 알림을 받고 왔는지 뿐이었다. 물론 메뉴가 적힌 한 장의 전단이 있었으나, 전단에 적힌 내용은 메뉴판과 동일하였다. 또한, 테이블링 어플에 매장 이용방법 링크를 클릭하였을 때 볼 수 있는 것은 파이브 가이즈의 인스타그램 계정 뿐이었다.
만약, 메뉴판에 파이브 가이즈의 연혁이나, 왜 미국에서 얼마나 유명한지 등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면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지루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복잡한 옵션이나 추천 메뉴, 파이브 가이즈가 추구하는 특유의 맛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면 앵커링 효과로 인해 조금 더 맛있게 느꼈을 것 이다. 점원이 질문할 내용을 미리 기재해 놓고 이에 대한 추가 설명을 더하여 주문 과정에서 지체도 줄일 수 있다. TXT 커피와 같은 센스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일론 머스크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전, 모든 부품, 단계가 꼭 필요한지 더 개선할 수 있는지(비용을 줄이거나 효율을 올릴 수 있는지) 검토하고 설계한다고 한다. 오프라인 매장도 이와 별다르지 않다. 소비자에 빙의 되어 각 단계를 경험하고, 검토한 뒤 개선하는 것만 으로도 같은 상품으로 더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