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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Sep 09. 2019

나의 첫 직업이야기

직업상담사는 당신의 직업을 정해주지 않는다.

직업상담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고 하면 심심찮게 고민 좀 들어달라거나 어떤 일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는다. 직업 외에 상담 수련을 받았다는 것도 아는 지인들은 내가 복잡하게 꼬인 진로의 미로에서 나가는 길을 알려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미안하지만, 직업상담사는 당신의 직업을 정해주지 않는다.   

  

처음 직업상담 일을 시작했을 때 구직자가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힘든 마음 토닥여주며 본인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주고 싶었다. 망상이었다. 한 상담사가 맞는 구직자 수는 몇십에서 몇 백 명이다. 게다가 실적을 쌓아야 해서 어떻게든 취업시키고 봐야 한다. 반년도 안돼서 퇴사하든지 말든지 사회생활이라는 틀에 구직자를 밀어 넣어야 했다.     


이게 맞는 건가 고민될 무렵 한 구직자가 취업자가 돼서 찾아오셨다. 취업시켜줘서 고맙다며 음료를 들고 오셔서 절대 안 받겠다고 했더니 같이 마시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셔서 음료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이 가시고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하면서 이유도 없이 울고 싶었다. 뭐 하나 잘해준 게 없었다. 매일 채용사이트 뒤지면서 이력서 내라고 재촉하는 것 외에는. 그런데도 음료를 가지고 와서 고맙다고 하면 나는, 이 일이 제대로 된 상담이 아님을 또 한 번 직시해야 했다.     




취업 못한 게 죄도 아닌데 미안함과 두려움, 민망함이 섞인 표정으로 신규 구직자는 기관으로 들어온다. 자리에 앉고 나면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들어주고 싶다. 불안할 테니까, 자꾸 뒤처진 것 같을 테니까. 퇴사자라면 내가 이것도 못 버티는 인간인가 싶으니까. 하지만 내게는 이렇게 들어온 구직자 수가 어마어마하게 쌓여있다. 빨리 상담을 마무리해야 한다. 구직자가 원하는 건 적성에 맞는 게 어떤 분야인지, 취업을 준비하는데 겪는 힘든 마음을 잘 버티는 방법이 있는지를 아는 건데, 내가 줄 수 있는 건 수많은 일자리 중 괜찮은 곳을 골라 지원해보라는 일방향 메시지뿐이다.     


그래서 퇴사했다. 뭐 하는 짓인가 싶어서.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취업자 사후관리로 취업자를 보러 직장 근처로 가는 외근이 있다. 취업자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나는 공식적인 외근이기에 오래도록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 업무 외에는 어떤 만족감도 느끼지 못했다.     


지금은 직업상담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다.(훨씬 좋게 변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취업기관이 아닌 직업훈련기관에서 근무 중이라 구직자 상담을 하지 않는다. 현실적인 한계는 있다. 모든 구직자에게 전문상담센터처럼 상담한다면 직업상담사 수는 너무 많이 늘어나야 하는데 상담인력의 급여는 어떻게 줄 것이며, 취업률을 산정하는데 얼마나 오래 걸리겠는가. 구직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일 수가 없는 구조다. 


내게는 아프고 답답한 첫 직업이었지만 여전히 이 직업을 사랑한다. 꼭 민간위탁기관이나 고용센터에 있어야만 직업 상담을 하는 건 아니니까. 사회생활 경력이 쌓일수록 직업상담 및 진로상담은 ‘너한테 맞는 건 이거다! 도전!’을 외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성공적인 진로선택은 나를 잘 알기 위해 일단 여기저기 파봐야 아는 경우가 많다.      


내가 해줄 수 있다고 느끼는 건 여러 우물을 파고 그중에 돈+환경+적성+끈기의 결합으로 하나 혹은 몇 개의 우물을 파겠다고 결정하기까지 겪는 복잡한 감정에 공감하는 것이다. 당연한 감정이니까. 이건 줄 알았는데 아니면 어떡할까요? 그러면 다시 돌아가면 된다. 


사람이 칼을 뽑았는데 아니면 다시 검 집에 넣어야 맞다. 애꿎은 무를 써는 게 아니라. 


진로와 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사람으로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는 건, 진로는 수정이 가능하다는 거다. 


예외 없이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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