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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Aug 08. 2019

오늘도 출근하는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새벽을 여는 사람들 

토요일 새벽 6시 20분.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을 억지로 부릅뜨고 새벽시장에 간 적이 있다. 꼭두새벽에 시장이 선다는 엄마 말에 호기심이 인 나는 머리감기를 생략하고, 맨밥을 몇 숟가락 입에 퍼 넣고 시장이 서는 달성공원으로 갔다. 


반은 깨고, 반은 잠든 채로 엄마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 공원으로 들어가는 언덕길을 올라갔다. 차가 주차돼 좁은 골목길을 지나자마자 끝도 없는 좌판이 보였다. 공원 입구로 가는 긴 대로는 차량이 지나다니지 않도록 통제되어 있었고 대로 양 옆으로 좌판이 늘어섰다.     

 

번데기와 믹스커피를 파는 좌판부터 생선을 파는 좌판, 구석에 작은 트럭을 놓고 과일을 파는 아저씨까지 각양각색의 풍경이 펼쳐졌다. 빨간 소쿠리에 담긴 파프리카, 나란히 놓인 3개 2천원(맞나?)오이, 판판이 높게 쌓인 달걀, 투명한 비닐에 쌓인 삶은 옥수수. 7시가 안돼서 공원에 도착했는데 시장은 활기찼고 사람들로 북적댔다. 시장에서 마주친 빌라 위층의 아줌마는 언제 장을 다 보셨는지 구루마(장바구니. 카트모양으로 생겼다.)에 장거리가 가득이었다.      


7시도 안돼서 이렇게 북적대면 도대체 몇 시에 장사 준비를 하고 나오는 걸까.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주는 활기와 치열함에 압도돼,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기록하겠다는 목표도 잊고 한참 시장을 바라봤다.      




몇 년이 지났어도 생생한 기억에 저녁식사 자리에서 새벽시장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는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라는 만화가 있다면서 용산역의 풍경을 말해줬다. 


아빠는 도배 일을 한다. 여러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시간당 돈을 받는 도배공인데 간단히 말하자면 막노동이다. 내가 식빵이라고 부르는 스타렉스 차량을 모는 아빠는 6시 20분까지 용산역 앞으로 간다. 


역 근처에 차를 세우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아빠 차를 타고 현장으로 이동한다. 역 앞에는 농촌 날일을 가는 사람부터, 막노동꾼, 아빠처럼 도배를 위해 건설현장으로 가는 사람까지 많은 이들이 있다고 한다.      


7시에 시작하는 도배 일을 위해 새벽 첫차를 타고 용산역으로 모이는 사람들. 첫차인 버스가 늦으면 환승하는 지하철역에 도착하는 것도 늦어지므로 노발대발 한다는 사람들. 누가 그 시간에 지하철과 버스를 타나 싶은 첫차에는 버스를 타고, 내리고, 지하철을 타고, 내리고. 그렇게 역 앞에 모여 하나의 차를 타고 한 곳의 도착지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 있다.     


MBC폭염특보 뉴스화면 中


밥벌이의 힘듦에 핸드폰으로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얼려온 물이 순식간에 녹는 더위에 연신 물을 마시면서, 바닥이 더러워서 깔고 앉은 종이박스가 땀에 젖어 눅눅해지는 일상을 무심히 넘기며 자신이 맡은 그 날치의 일을 마무리한다. 


집에 돌아와서 시원한 선풍기를 앞에 두고 꽉꽉 누른 밥을 두 공기씩 먹고 tv를 보며 꾸벅꾸벅 조는 아빠. 드라마를 보는 둥, 마는 둥 졸다가 안방에 들어가서 그대로 잠에 빠지면 하루는 끝이 났다. 아빠의 하루에 미래에 대한 불안은 들어갈 공간이 없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어진 하루하루의 밥벌이를 감내하며 고요한 새벽과 만나 하루를 시작한다.     

 

누군가는 그렇게 일해서 돈을 얼마냐 버느냐, 성공하지 못하면 막노동이나 하게 된다고 할지 모르지만 아빠가 여는 새벽은 나를 한 끼도 굶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게 했다. 막노동은 자연이 주는 시간과 함께 한다. 일하다가 지루할 때 카카오톡을 할 시간도, 일하기 싫어서 잠깐 미뤘다가 저녁에 할 수도 없다. 해가 지기 전에 그 날의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지금’이라는 순간에 가장 충실한 일꾼들이다.   

    

회사 일에, 사람에 짜증이 치밀어 오를 때면 나는 새벽시장의 풍경을 떠올린다. 잠겨있는 새벽의 문을 여는 일꾼들을. 미래에 대한 불안이 고개를 들 때면 첫 차를 기억한다. 지하철의 첫 차가 운행을 시작하는 시간. 그 시간에 꼭 탑승 해야만 하는 사람들을.


 ‘아빠는 공부를 안 해서 맨날 현장에서 일한다 아이가. 어느 현장에 가도 스트레스 받지만 그래도 할 일은 일단 열심히 해야 하는 거다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면 뜨겁고 아릿하다.      


나중을 걱정할 시간에 주어진 오늘의 땀을 흘릴 사람들의 출근길을 떠올리며 나는 밥벌이라는 고단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거북이 같은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들이 여는 새벽은 멋있고, 때로는 울컥하며, 밥벌이의 엄숙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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