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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Aug 29. 2019

퇴사하기 전에 이건 꼭 챙겨야지!

비상금과 퇴사 리본은 챙기셨나요?

나는 안다. 당신이 어떤 마음으로 퇴사를 결심했는지, 작성해둔 사직서를 만지작대는지 혹은 퇴사를 준비하는지. 각자의 이유는 다양하고 고통의 깊이도 다르기에 퇴사를 결심했다면 그 결정을 막고 싶지는 않다.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퇴사할 사람은 하고, 회사에서 버틸 사람은 버틸 테니까. 다만, 어차피 나올 거라면 꼭 필요한 것 두 가지는 챙기는 현명함을 발휘했으면 한다.      


나는 입사 후 3, 6, 9, 12개월마다 온다는 퇴사의 고비를 넘겼었다. 3개월 단위로 오는 고비만 넘으면 일이 더 익숙해져서 오래 다닐 수 있겠다 싶었다. 이번 고비도 넘어가면 2년을 채우겠지, 3년을 채우겠지 했지만 내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퇴사를 결정했고 2가지를 챙겨서 나왔다.     




첫 번째는 퇴사라는 리본 예쁘게 묶기다. 사실 거지 같다. 지긋지긋한 회사, 꼰대 같은 인간들에게 웃으면서 마무리를 한다는 건. 하지만 사람은 언제, 어디서 마주칠지 모른다. 나는 첫 번째 직장을 3주 만에 퇴사하면서 결심했다. ‘다시는 이 직종에 발을 들이나 봐라!’ 실장이 너무너무 싫었지만 퇴사하는 순간까지 웃으면서 깍듯하게 고개 숙여서 인사하고 나왔다. 다시는 볼 일이 없었다! 고 하면 좋겠지만 다시는 안 온다는 직종에 발을 들이게 됐다. 


큰 설명회가 열리면 같은 직종의 실무자들이 모이기 때문에 당연히 마주치는 날도 있다. 그쪽은 나를 껄끄러워할지 아닐지 모르지만 나는 꼬박꼬박 출퇴근을 했고, 후임이 들어오기까지 자리를 지켰으며, 나오는 순간까지 예의 있게 행동했기에 숨을 이유도 껄끄러울 이유도 없다.      


전 직장에서도 퇴사를 앞두고 모든 기억이 미화돼서 즐겁게 나왔고 대표님의 제안으로 지금 회사를 만나기까지 했으니 지구는 생각보다 좁았고 퇴사한 회사는 나보다 오래 살아남는 법이다. 단, 법적인 문제 또는 윤리적인 문제가 있는 회사라면 좋은 마무리고 나발이고 나오는 게 답이다. 한 직장은, 동료와 이야기를 하다가 같은 무(無) 경력 신입인데 내 월급만 몇십만 원 낮다는 걸 알게 됐다. 동료가 ‘너 진짜 열심이다. 뼈를 묻을 듯이 일하네.’라고 말할 정도였기에 배신감이 어마어마해서 이직할 곳을 확정하고 퇴사 통보했다. 그동안 일한 돈도 못준다고 해서 신고까지 하려고 했었다. 이 정도의 경우가 아니라면 웬만하면 속으로 욕하고 겉으로는 웃으며 나오는 게 좋다.     


캘리그래피 배우던 직장인 시절. 힐링 글귀만 찾던 내게 누군가 '마음이 많이 힘든가 봐요.'라고 물어서 울컥했었던....


두 번째는 비상금이다. 퇴사하고 나면 원하는 걸 마음껏 할 줄 알았는데 초년생이었던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도 돈이 든다는 사실을 몰랐다. 글 쓰는 건 종이랑 펜만 있으면 될 줄 알았다. 도움이 되는 글쓰기 강좌가 유료일 때. 지방에 사는데 서울에서 좋은 워크숍이 열렸을 때, 백수는 포기라는 선택지 밖에 없다.   

   

정말 합격하고 싶은 시험 준비를 위해서 퇴사한 적이 있는데 시험 관련 책을 사고, 시험료를 내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나 자신이 비참해서 운 적도 있다. 돈이 없으니까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무료만 찾아야 했고, 친구들과 마음 편하게 밥을 먹는 것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에게 대학 졸업 이후 단 1원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기에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속이 터질 것 같으면 코인 노래방 가서 300원(한곡) 넣고 소리 지르고 나온 적도 많았다.      


그런 순간을 통해 비상금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회사 다니면서 일, 인간관계, 상사로 인해 마음이 지옥이었는데 백수가 되어서도 돈으로 힘들어하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이번에는 퇴사하기 전에 6개월 생활비와 집에 줄 생활비를 따로 모아 두고 나왔다. 퇴사라는 리본과 비상금이 준비돼도 불안은 어차피 따라온다.      


계획을 철저하게 세운다고 퇴사 후에 잘 풀린다는 보장도 없고, 무계획으로 쉰다고 해서 마냥 행복하고 즐겁지만도 않다. 그래도 최소한의 안전망을 준비해두고 나오면 돈이 떨어질까 봐 불안에 가득 찬 선택으로 또 한 번의 퇴사를 되풀이하는 사태는 피할 수 있다. 퇴사를 준비 중인 사람이라면 충분한 비상금은 마련해두고 좋게 나오시기를. 


퇴사 후는, 생각보다 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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