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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Oct 14. 2019

싫어서 퇴사한 회사가 생각날 때

차곡차곡 쌓인 감정과 기억 

2주 전, 전(前) 직장 근처에서 신입이와 저녁을 먹었다. 나의 퇴사로 인해 회사에 들어온 직원이었는데 마의 삼 개월 고비를 막 넘긴 참이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각자의 회사 이야기를 하는데 신입이가 동료 K 이야기를 했다. 전 직장은 국비지원 교육을 하는 곳이라 문의하러 오는 사람이 꽤 많다. 그날도 교육 문의를 위해 회사에 온 분이 있었다. 


K는 그분을 사무실로 안내하면서 ‘찐빵쌤 오시면 상담받으면 되니까 잠깐 기다리세요.’라고 했다. 찐빵쌤. 아직도 내 이름(별명)을 부르고 있을 줄이야. ‘쌤 퇴사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쌤 이름 부르는 거 있죠?’라는 신입이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 역시 지금 직장에 입사했을 때 전 직장을 자꾸 우리 회사라고 불렀다.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 

싫어서 나온 회사인데도 생각날 때가 많다. 버스에서 내려 회사까지 15분을 걸어가면서 매일 지나치던 다리와 신호가 긴 횡단보도. 여름에 맞은편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 와서 직원들에게 나눠주던 회사 교육생들. 진상과의 통화를 마치고 몰래 울었던 회사 화장실. 자려고 누웠을 때, 친구와 사회생활 이야기를 하다가, 설거지하다가, 음악을 듣다가 문득 ‘아, 여기 있었지.’ 싶은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회사 밖에서 만났다면 좋은 친구가 됐을 사람과 그럼에도 미워했을 사람들. 외부 평가준비에 숟가락만 얹고 인센티브는 꼬박꼬박 챙기던 동료. 그 작은 회사에서도 편을 가르던 동료. 내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고 내 물음을 무시하고 바쁜 척하던 동료. 뭐 저딴 사람이 다 있냐고 욕했고, 상상으로 몇 번쯤 지랄을 떨었다.      


회사원인 나, 친구와 수다 떠는 나, 집에서 투정 부리는 나. 전부 ‘나’인데 나는 그들이 보여주는 회사원의 모습으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잘도 내렸다. 다시 돌아간다면 덜 예민하게 굴었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동료라는 이들에게 친구만큼의 마음을 기대해서 실망하고 서운하고 짜증을 냈다. 동료는 동료일 뿐 친구가 아닌데. 친구보다 자주 보지만 회사원이라는 하나의 단면만 보는 사이. 그런데도 정이 들어 인간관계가 어려웠는데 퇴사를 하고 나니 그들의 미운 행동이 이해 갈 때도 있다. 동료라는 이름표조차 없는 남이 되니 밉지도 않아진 건지.      


회사에서 국비교육을 받던 교육생이 준 선물 :)  


차곡차곡 쌓인 고마움과 미움의 감정도 회사를 중심으로 한 음식점과 카페 등 장소에 대한 기억도 여전한데 끝은 참 허무할 정도로 쉽다. 20년 다닌 회사 퇴사하는 데는 5분 걸리더라는 웹툰 댓글처럼. 고민하느라 출력되기까지 한참 걸렸던 사직서와 달리 빠르게 이루어지던 퇴사처리와 얼떨떨했던 마지막 근무일.

      

이렇게 불쑥 나를 찾아오는 기억은 평가 준비를 위해, 상담을 위해, 교육생들의 행정 처리를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지냈던 그때의 내가 그리워서 인지도 모른다.      



그러게 나한테 좀 잘하지, 팀원 및 대표님. 

이렇게 생각날 줄 알았으면 좀 잘할 걸 그랬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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