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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Aug 25. 2019

좋아하는 일 하는 '나' 먹여 살리기

내 안에 너무도 많은 내가 있지.

이름만 들어도 뭘 배울지 선명하게 그려지는 과(전공)가 있다. 나는 심리학을 전공했다. 사람의 마음, 잘 모르겠다. 전공을 더 공부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등록금 고지서를 확인하고 며칠 뒤, 대학원 합격 포기원을 제출했다. 문제는 돈. 대학교와 앞자리가 달라진 등록금을 낼 자신도, 그럴 돈도 없었다. 돈을 모아서 특수대학원(야간수업)을 진학하기로 했다. 5학기 등록금의 절반은 벌자는 목적으로 회사생활을 버텼다. 몇 번의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며 등록금을 모았고 반년 동안 살 비상금까지 마련된 날. 회사에 퇴사 통보를 했다.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건 돈이 없어서라고 질리도록 말하고 다녔다.      


돈이 준비되자, 이번에는 용기가 없었다. 피땀눈물 중에 피 빼고 다 들어간 돈을 공부에 쓴다고 생각하니 끝까지 해낼 자신이 없었다. 4년간 배운 게 아까웠고 그럴듯한 꿈은 있어야 미래가 암담하지 않을 것 같아서 전공을 붙들었다. 전문가가 아니면 회사에서 쓰고 버려지는 부품이 될 것 같아서. 대학원, 대학원 노래를 불렀으면서 전공서적은 들춰보지도 않았다. 살다가 한 번쯤 깊게 공부해보고 싶은 학문. 딱 그 정도의 좋아함이었다.  

   

학부시절에 교수님이 그러셨다. 사회에 나갔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건 아주 어려운 일 일거라고. 스물네 살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사회에 익숙해진 나는, 학교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이 길이 아닌데, 아니라고 인정하면 이룬 것 없는 어정쩡한 사람이 될까 봐 겁났다. 하고 싶은 걸 하자니 재능이 없었다. 


퇴사는 예정됐고, 앞은 깜깜했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울 때면 온갖 생각이 엉켜 머릿속이 혼란했다. 잠이 안 오면 TV라도 보다 자야지. 대화의 희열 2에 김영하 작가가 나왔다. 생각 없이 보던 중에 김중혁 작가의 말이 가슴을 훅 치고 들어왔다. 그가 한 말을 옮겨본다.     



저는 여러 개의 김중혁이 있는 것 같고,

소설가 김중혁, 잡지사 기자 김중혁, 방송인 김중혁이 있는데

제일 소중한 사람은 소설가 김중혁이예요. 얘는 평생 글 쓰게 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다른 애들이 열심히 조금만 노력해가지고 얘를 먹여 살리고 싶어.      

그래서 다른 일도 열심히 했어요.


대신에 소설가 김중혁은 소설만 쓸 수 있게 해주자.

그런 마음으로 많은 내가 얘를 지원해 준거예요, 계속.     


김중혁 이 사람, 소설 쓰는 김중혁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나는 상담을 하고 싶었기보다는 멋진 상담심리사가 되고 싶었다.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싹 해결하도록 돕는 사람. 더불어 상담 케이스가 많이 들어와서 돈도 엄청 벌었으면 했다. 욕심이었다.(심리학은 소수를 제외하면 고학력 박봉에 가깝다.) 욕심을 내려놓고 수많은 나를 동원해서 내가 좋아하는 나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글 쓰는 망생이인 나를 지원해주기로.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 무언가가 될 수 있으니 돈을 써보라는 부추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좋아하는 글을 마음껏 읽고 쓰는 ‘나’ 면 충분하니까. 운이 좋다면 작은 성과라도 거두지 않을까. 정도의 희망만 가지기로 했다.      


이게 퇴사하고 보름 뒤에 썼던 글이다. 퇴사를 하고 2달이 지났다. 나는 주 3일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글을 쓴다. 대단한 걸 이루지는 못했다. 에세이 수업을 들었고, 브런치라는 개미지옥에서 즐겁게 ‘읽음’을 실천 중이고 감사하게도 작가 신청이 통과돼서 글을 쓴다. 예전에도 직장인이고 지금도 직장인이다. 다른 게 있다면 내가 번 돈이 글 쓰는 나를 지원하는데 들어가서 돈 버는 게 기쁘다는 것. 그리고 경멸하던 경쟁에서 뛰어내려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것. 


이 길의 끝이 어떨지는 몰라도 만족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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