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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Oct 28. 2019

열심히, 라는 이름의 우울증

진짜 속 안에 감춰진 말랑말랑한 나.

내 마음은 꽤 많이. 아팠다.


2013년 1학기. 슬슬 땅이 달궈지고 더위가 언제 나갈까 눈치를 볼 때였다. 나는 자기 계발서에 빠져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어제도 오늘도 한 결 같은 내게 그들은 멋있는 존재였고 나는 그들처럼 살기로 했다. 시간을 쪼개 쓰기 시작했고 김밥 한 줄을 다 먹을 시간이 없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근로하러 도서관으로 뛰어갔다. 공강 시간에 해바라기 하는 친구를 한심하게 여기며 각종 스펙 쌓기에 돌입했다.     


이상한 일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자주 어지러웠고 머리가 꽉 눌리는 것 같은 두통이 생겼다. 뉴스만 보면 마음이 불안했다. 친구는 내가 힘들어 보였는지 초콜릿을 건네며 힘들면 그만하라고 했지만 나는 바쁜 거지, 힘든 게 아니라고 했다.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그들처럼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방법은 노력과 열정밖에 없었고 그렇게 나는 ‘열심히’라는 이름으로 병들어가고 있었다. 친구는 내 청바지를 당기며 얘는 어떻게 스키니가 헐렁하냐고 했고, 외숙모는 마른 애가 살이 더 빠졌다고 했지만 정작 나는 변화를 못 느꼈다. 배탈이 나서 내과에 갔을 때 간호사가 내 혈압이 너무 낮다고, 주기적으로 체크해야 한다고 말했고 42~43kg에서 변동 없던 체중은 39kg으로 줄었다. 몸이 보내는 경고를 바빠서 컨디션이 안 좋은 거라고 여겼다.      


몸의 경고를 무시하던 어느 날,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던 그때부터 깊은 늪에 발이 빠진 것 같은 날이 이어졌다. 어지러움의 빈도가 늘어났고 밤마다 이유도 없이 울었다. 지하철에 서있을 때면 뛰어들고 싶었고 날씨가 너무 좋아서 죽고 싶었다. 죽고 싶지 않았는데 자꾸 죽음만 생각났다. 이상심리학 수업을 듣는데 내가 우울증 환자 군에 적합하다는 걸 알았다.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 싶어 학교 상담실에 상담 신청을 넣었지만 대기가 길었다. 결국 전공시험이 꽉 찬 평일 오전. 나는 핑-도는 어지러움과 함께 사회대 복도에 쓰러졌다. 교수님이 119를 부르고 나는 대학병원에 실려 가 온갖 검사를 받는 걸로 1학기가 끝났다.     




방학이 끝나고 내 차례가 돌아와 학교 상담실에서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받으면서 내가 우울증을 깊게 앓았다는 걸 깨달았다. 우울증은 이론과 실제가 다르구나. 이상심리를 공부하면서 왜 우울증 치료가 어려운지 이해가 안 됐는데 겪어보니 알 수 있었다. 우울하다는 건, 물에 잠겨있는 느낌이다.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는 잠겨있다는 느낌.     


원인도 경과도 사람마다 다르다지만 주로 ‘내’가 없어지려고 할 때 나라는 존재는 우울을 심어 경고를 보내는 것 같다. 완전히 없어지기 전에 나를 찾으라고. 그러나 내가 나를 제대로 보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나는 워커홀릭처럼 멋있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거라는 어긋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돈도 빽도 없는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건 노력이었고 나를 몰아붙이기만 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웹툰 모퉁이 뜨개방


상담 시간에 그동안 한 활동을 적는 시간이 있었는데 상담사는 어떻게 이 많은 걸 할 수 있었냐고 했다. (다 지나간 일이니 말하지만 힘들었다, 진짜.) 빼곡하게 적힌 스펙 쌓기 활동을 보면서 내가 나에게 저지른 짓을 실감했다. 스펙 쌓기가 차지한 시간에 사라진 건 진짜 내 모습이었다. 햇살 맞으며 친구와 해바라기 하는 스펙에 하등 도움 안 되는 시간이 사실은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시간이었고, 음악을 들으며 글을 끄적거리는 시간은 살아갈 힘을 주는 마음의 휴식이었다. 나는 워커홀릭보다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1주일에 하루는 밖에 안 나가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내향적이고 느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1분 1초를 쪼개서 살았으니 숨 막혔을 수밖에. 단기상담기간 동안 천천히 1학기의 나를 돌아보면서 다시 이런 상황이 반복됐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했다.      


매일 내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걸 깨닫고 나서 우울함 없이 행복했냐고 물으면, 아니다. 우울이란 녀석은 어김없이 내가 바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오랜만. 이라며 나타났으니까. 특히 이 녀석은 사회생활 스트레스를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 오는구나.’ 하고 대비한다는 점이다. 혼자 방에 들어가서 글도 쓰고 음악도 듣고, 주말에는 산책도 나간다. 그런 시간이 유지되면 거짓말처럼 우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안타깝게도 인생에는 좋은 일만큼 나쁜 일이 몰려오고, 끝없이 반복된다. 그 속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나를 잘 붙잡고 있어야 한다.  

    

사회적인 나 말고 속 안에 감춰진 말랑말랑한 나를. 


내게는 혼자 보내는 자유시간이 방법인 것처럼 각자가 말랑한 나를 지키는 방법은 꼭, 알고 있어야 한다. 

마냥 행복하기에 현실은 생각보다 잔인하니까 말이다.                 




*제가 겪은 증상과 비슷한 증상이 유지되고 있다면 상담센터나 정신과 방문을 추천합니다. 

진단과 상담은 전문가에게.  :)

가벼운 정도의 우울을 넘어선다면 약물치료가 필요할 수 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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