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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Sep 30. 2019

뚜벅이를 태워준 이들에게

뚜벅이의 운전면허 취득기 

버스와 지하철로 웬만한 장소는 다 갈 수 있는 좁은 땅에 차는 필요 없을 줄 알았다. 영업직이 아니면 외근 나갈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잦은 외근 때문에 택시 안에서 울렁대는 속을 다스리려 애써야 했다. 주변에서는 ‘운전하면 멀미 안 한대~’라는 소문인지 진실인지 모를 말을 흘렸고 퇴사하고 시간이 남아돌던 나는 학원에 등록했다. 필기와 장내주행이 한 번에 붙고 나니 재밌다~ 싶었는데 도로주행은 ‘하하... 내가 면허를 왜 딴다고 했을까.’ 후회의 연속이었다.     


차선을 유지하면서 백미러를 살펴서 깜빡이 켜고 엑셀 적당히 밟으면서 차선 변경! 을 하는데 심장 터지는 줄 알았다. 도대체 이 복잡한 작업을 다들 어떻게 하는지. 장내기능에서 기어 다니던 나는 시속 60km 유지 구간이 나오면 ‘저 면허 안 딸래요.’만 입속에 맴돌았다.      


도로주행 시험 당일. 학원에서 좌회전을 한 뒤 계속 직진하다 유턴 한번 하고, 마지막에 우회전 한번 하면 끝나는 가장 쉬운 코스. 학원 수강생이 모든 걸리길 빈다고 해서 일명 비나이다 B코스를 간절히 바라며 운전석에 앉았다. 너무 긴장해서 시험 치는 동안 손이 떨렸다. 다행히 운이 따라줘서 4개 코스 중 B코스에 걸려 내게도 면허증이 생겼다. 합격통보를 받고 보니, 내게 기꺼이 옆자리를 내준 사람들이 떠올랐다.    

  

자나 깨나 안전운전!  이미지 출처는 도로교통공단 웹진 온라인 신호등 


차도 면허도 없던 시절 먼 외근 길에 당첨됐다.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는 곳이라 높은 직급의 상사와 동행했는데 신입사원을 위해 스케줄을 맞춰 먼 길을 운전하면서도 힘든 티 한번 안 내셨다.(천사다...) 같이 일했던 언니는 1시간 넘게 운전해서 엄마와의 약속 장소까지 나를 데려다줬다. 교내 활동을 같이한 초보운전자 지인은 모임이 늦게 끝났다는 이유로 살아서 집에 갈 수 있다는 자기 최면을 걸고 우리 동네까지 나를 데려다줬다. 아버지가 타던 차를 물려받은 친구는 아버지가 직접 써주셨다는 초보운전 종이를 붙이고 어렵사리 주차를 해서 맛있는 식당에 데려가 주기도 했는데 지금은 익숙해져서 주차도 잘한다.    

   

내가 그동안 면허의 필요성을 못 느낀 건 대중교통 때문도 있지만 주변 이들의 따뜻한 호의 덕분이었다. 소중한 사람과의 약속 장소에 늦을까 봐, 늦게 끝난 회식이라 걱정돼서, 지하철역까지 걷기엔 멀 텐데... 싶은 언니, 오빠, 친구, 동료의 마음이 나를 편안하게 해 줬다. ‘익숙해지면 운전 쉬워~’라는 말로 생색 없이 뚜벅이인 나를 태워준 이들에게 감사하다.      


막상 해보니 운전은 절대 쉬운 게 아니다. 엄청난 신경을 쓰고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었지. 장거리 운전을 하고 온 아빠가 왜 그렇게 피곤해했는지 백 퍼센트 이해한다. 나중에 중고 모닝이를 사게 된다면, 그리고 운전이 익숙해지면 나도 은혜 갚는 마음으로 뚜벅이 친구를 옆자리에 태워주고 싶다. 물론, 친구가 탄다고 동의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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