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일제시대니, 독립이니 하는 말들을 지속적으로 들어왔다. 고등학교 때는 문과여서 역사와 더 가까웠고, 고1 때는 꽤 재미있어하기도 했다. 삼일절이나 광복절이면 울컥해지고 감사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잊었다. 그러다가 시카고 타자기를 만났다. 시청률이 낮아서 다들 '그런 드라마가 있었나?' 되묻지만 나에게는 손에 꼽을 소중한 드라마다. 대본집도 가지고 있다. 독립운동+ 로맨스+ 판타지인데 대본집을 읽을 때마다 참 고맙다.
오랜 시간 글을 읽고 써왔다. 습작을 하면서 우리말이 이 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감동할 때가 많다. 수많은 비유를 품고 나를 기다리는 단어와 문장을 마주할 때면 한글이 모진 세월을 버티고 살아남았음이 감사해진다. 어떤 이유였든 터무니없이 낮은 독립이라는 편에 한 표를 던진 이들의 피를 떠올린다.
소설의 첫 문장을 쓰려고 키보드 위에 손을 얹을 때, 새 글을 구상하려 노트를 펼칠 때마다 짧은 기도를 한다. 신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나라를 지켜낸 이들에게. 당신들의 손으로 지켜 낸 땅에서 당신들이 수없이 외치고 썼던 언어로 글을 쓴다. 그러니 적어도 부끄러운 글로 탐욕 부리지 않으려 한다. 나는 대단한 애국자도 아니고, 내 손톱 밑 가시가 제일 아픈 사람이다. 글에 덕지덕지 내 욕심을 붙이고 싶을 때마다 시카고 타자기의 대사를 되새기며 더 담백해지려고 노력한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바칠 게 청춘 밖에 없어서,
수많은 젊음이 별처럼 사라졌는데,
해냈네요, 우리가."
"당신들이 바친 청춘 덕분에 우리가 이러구 살아.
그때 바쳐진 청춘들한테도 전해줘. 고생했다고.
이만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시카고 타자기 신율과 세주의 대사 中
8월 15일 광복절. 앞으로도 매년 감사하고 기쁘게 15일을 보낼 거다. 처절하도록 아프게 지켜내야 했던 땅에서 태어났으니 행복하게 잘 살겠다. 헬조선이라 부를 만큼 어려운 현실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낮은 곳을 모른 척하지 않고 가난을 이겨내며 한발 한발 나아가겠다.
2020년의 8월 15일이 와도 2021년의 8월 15일이 와도 나는 여전히 글에 묻은 욕심을 덜어내려 애쓰고,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겠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있다고 전하고 싶다. 당신들이 흘린 피와 눈물을 잊지 않고 있다고.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