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발목 잡은 건 나였다
책을 읽다 보면 너무 나 같아서, 꼭꼭 숨겨둔 마음이 훤하게 드러나 버린 것 같아서 눈가가 시큰해지고 눈을 깜빡거리다 결국은, 우는 때가 있다. 내게는 미 비포 유(me before you)가 그랬다. 미 비포 유(me before you)는 오토바이 사고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무엇도 할 수 없는 남자 윌과 오래 일하던 카페에서 잘리고 생계를 위해 윌의 간병인을 맡게 된 루이자의 사랑이야기인데 나는 둘의 사랑보다 루이자 때문에 많이 울었다.
절대 동네에서 벗어나지 않는 혹은 못하는 여자.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채감과 애정이 뒤엉킨 복잡한 마음과 아무 일 없는 동네의 하루하루가 인생의 전부인 여자. 루이자 클라크.
나는 그녀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자꾸 그녀에게서 나를 봤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 미래에 대한 불안, 어제도 오늘도 똑같은 사회생활의 반복이 나를 누를 때였다. 이대로 내 인생이 끝날까 봐 무섭다가도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받으며 안주하고 싶다는 모순에 마음은 매일 멀미 중이었다. 왜 이렇게 현실은 힘들고, 사랑하는 가족은 나를 힘들게도 하는지 이해 못할 하루가 이어질 때, 이 책을 만났다.
“안 될 건 뭔데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남자 친구가 안 된다고 하니까. 스물일곱이나 됐는데도 착한 딸이니까. 너무 무서워서. 이러지 말아요, 클라크. 좀 삶을 살아봐요. 대체 발목 잡는 게 뭐가 있다고 이래요?”
나는 다음 페이지를 바로 넘기지 못했다. 루이자와 함께 이어진 감정이 파도를 타고 현실의 내게로 넘어왔다. 사회가, 가족이 나를 발목 잡는 줄 알았는데 정작 내 발목을 붙들고 나아가지 못하게 한 건, 나였다. 가족 중 누구도 내게 책임져달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가족에 대한 부채감이 쌓인다고 여겼고, 현실이 힘드니까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다 말했다. 내가 원하는 삶을 못 사는 수십 가지 이유라는 울타리를 윌은 ‘너 그거 때문 아니잖아?’라며 부쉈다.
사실은 겁이 났으면서.
월급이 주는 달콤함, 정규직이 주는 소속감, 주변의 시선. 그렇게 보통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과 오만함에 꿈이 반갑기보다 겁났고, 꿈은 추억상자 속에 들어앉아 있기를 바랐다.
안 그래도 가진 게 없는데 꿈을 쫓아가다 실패까지 해버리면 어떻게 다시 일어 나, 내가.
월급도, 회사원 신분도 한번 가져보니까 가지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어려웠다. 나아가는 것보다 핑계 대는 게 훨씬 쉬워서 끝도 없이 만든 핑계는 쌓이고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에 잠을 설치던 밤들.
루이자에게 건넨 윌의 말이 꼭 내게 하는 말인 것 같아 그 페이지에서 오래 머물렀다. 조금 더 용기 내고 한발 더 나아간다고 해서 실패는 아닌데. 전 재산을 걸고 사업하는 것도 아닌데, 실패하면 어때서 나를 믿고 나아가는 걸 이다지도 겁내는지.
어렵게 페이지를 넘겼지만 그러고도 몇 년이 지나서야 나는 핑계 자리에 용기를 올렸다. 그럼에도 당장 손에 쥐어지는 결과 없이 나아가는 망생이의 길이 막막해질 때, 그냥 ‘헬조선이니까.’로 퉁 치고 뒤돌아 가버리고 싶을 때면 윌이 했던 말을 되뇌면서 용기를 붙잡는다.
아무것도 발목 잡는 건 없으니 좀 삶을 살아보라고.
숨만 쉬는 걸 살아있다고 여기지 말고 가끔은 용기도 내고, 실패도 하고 그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