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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Nov 18. 2019

좀, 삶을 살아봐요.

내 인생을 발목 잡은 건 나였다

책을 읽다 보면 너무 나 같아서, 꼭꼭 숨겨둔 마음이 훤하게 드러나 버린 것 같아서 눈가가 시큰해지고 눈을 깜빡거리다 결국은, 우는 때가 있다. 내게는 미 비포 유(me before you)가 그랬다. 미 비포 유(me before you)는 오토바이 사고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무엇도 할 수 없는 남자 윌과 오래 일하던 카페에서 잘리고 생계를 위해 윌의 간병인을 맡게 된 루이자의 사랑이야기인데 나는 둘의 사랑보다 루이자 때문에 많이 울었다.  

   

절대 동네에서 벗어나지 않는 혹은 못하는 여자.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채감과 애정이 뒤엉킨 복잡한 마음과 아무 일 없는 동네의 하루하루가 인생의 전부인 여자. 루이자 클라크.     


나는 그녀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자꾸 그녀에게서 나를 봤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 미래에 대한 불안, 어제도 오늘도 똑같은 사회생활의 반복이 나를 누를 때였다. 이대로 내 인생이 끝날까 봐 무섭다가도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받으며 안주하고 싶다는 모순에 마음은 매일 멀미 중이었다. 왜 이렇게 현실은 힘들고, 사랑하는 가족은 나를 힘들게도 하는지 이해 못할 하루가 이어질 때, 이 책을 만났다.      


“안 될 건 뭔데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남자 친구가 안 된다고 하니까. 스물일곱이나 됐는데도 착한 딸이니까. 너무 무서워서. 이러지 말아요, 클라크. 좀 삶을 살아봐요. 대체 발목 잡는 게 뭐가 있다고 이래요?”      

 

나는 다음 페이지를 바로 넘기지 못했다. 루이자와 함께 이어진 감정이 파도를 타고 현실의 내게로 넘어왔다. 사회가, 가족이 나를 발목 잡는 줄 알았는데 정작 내 발목을 붙들고 나아가지 못하게 한 건, 였다. 가족 중 누구도 내게 책임져달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가족에 대한 부채감이 쌓인다고 여겼고, 현실이 힘드니까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다 말했다. 내가 원하는 삶을 못 사는 수십 가지 이유라는 울타리를 윌은 ‘너 그거 때문 아니잖아?’라며 부쉈다.      




사실은 이 났으면서. 

월급이 주는 달콤함, 정규직이 주는 소속감, 주변의 시선. 그렇게 보통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과 오만함에 꿈이 반갑기보다 겁났고, 꿈은 추억상자 속에 들어앉아 있기를 바랐다.      


안 그래도 가진 게 없는데 꿈을 쫓아가다 실패까지 해버리면 어떻게 다시 일어 나, 내가.      


월급도, 회사원 신분도 한번 가져보니까 가지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어려웠다. 나아가는 것보다 핑계 대는 게 훨씬 쉬워서 끝도 없이 만든 핑계는 쌓이고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에 잠을 설치던 밤들.     



루이자에게 건넨 윌의 말이 꼭 내게 하는 말인 것 같아 그 페이지에서 오래 머물렀다. 조금 더 용기 내고 한발 더 나아간다고 해서 실패는 아닌데. 전 재산을 걸고 사업하는 것도 아닌데, 실패하면 어때서 나를 믿고 나아가는 걸 이다지도 겁내는지.     


어렵게 페이지를 넘겼지만 그러고도 몇 년이 지나서야 나는 핑계 자리에 용기를 올렸다. 그럼에도 당장 손에 쥐어지는 결과 없이 나아가는 망생이의 길이 막막해질 때, 그냥 ‘헬조선이니까.’로 퉁 치고 뒤돌아 가버리고 싶을 때면 윌이 했던 말을 되뇌면서 용기를 붙잡는다.     


아무것도 발목 잡는 건 없으니 좀 삶을 살아보라고.

숨만 쉬는 걸 살아있다고 여기지 말고 가끔은 용기도 내고, 실패도 하고 그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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