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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Dec 02. 2019

주워 담고 싶은 말

할 수 있다면, 나는 그 말들을 주워 담고 싶다. 

나는 그들에게 잘 다듬어진 말을 꺼낸다. 


타인이라 이름 붙은 그. 그녀. 혹은 그들. 


상대방이 다치지 않도록, 오해하지 않도록. 이라는 한 글자가 주는 어색함과 거리감은 나로 하여금 입을 열기보다 귀를 열게 했기에 주워 담고 싶은 말은 생각보다 적다. 정작 주워 담고 싶은 말들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온 마음으로 드러내는 그들로부터였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탓에 늘 안정감을 중요시하던 엄마에게 뱉은 ‘나는 엄마처럼은 안 살 아. 내가 왜?’라는 말이 얼마나 한 사람의 마음을 짓이기는지 이제는 안다. 

‘나는 찐빵이 네가 부럽던데. 나는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어. 좋아하는 게 없다.’라는 친구에게 ‘뭐라도 해야지, 시간이 아깝지 않아?’라는 말로 친구를 한심하게 여겼던 오만한 말을 기억한다. 

내 속 편하자고, 마음이 힘든 친구에게 ‘힘 내!’라는 말로 털어놓고 싶은 입을 막았던 나쁜 말을 떠올린다.    

  

엄마에게, 동생에게, 친구에게 내 안의 자루에 담겨있어야 했던 말들을 그대로 꺼낸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당황하던 눈빛과 꾹 닫힌 입술에 나는 그때서야 혹은 그때가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나중이 되어서야 자루 안에 담긴 말이 이었음을 깨닫는다.      




‘미안해. 덕분이야. 나였어도 그랬을 거야. 힘들었겠다.’와 같이 자루 속에서 나가야 할 말들은 아낀 채, 나가지 말았어야 할 말을 쉽게도 뱉어낸 입술과 혀는 어느 성서의 구절처럼 제일 더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소량만 있어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을 품은 말에 상처 받았으면서도 나 역시 그런 말을 내뱉었던 건, 그래도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랑 받음이 당연해서 사랑 받음을 감사할 줄 몰랐던 이기심은 많은 독을 뿜어내고서야 후회라는 이름을 새겼다.     


그래서 말을 고르는 연습을 한다. 


자루 안에 담긴 말 중에 애정과 관심을 빙자한 비난이 섞이지는 않았는지, 질투 어린 시샘이 담긴 말은 없었는지, 내 주장만 덕지덕지 뭍은 말을 꺼내려는 건 아닌지 점검하고 자루를 열려고 노력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많고 많은 말 중에 기왕이면 자루밖에 나가야 맞는 말들을 많이 하려고, 굳게 닫힌 입술보단 미소 짓는 입가를 볼 수 있는 말을 뱉으려고, 그 말에 진심도 같이 담아보려고 애쓴다.     


할 수 있다면, 나는 민망함과 미안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주섬주섬 그 말들을 주워 담고 싶다. 


그들에게 상처 입힌 모든 말들을 주워 영원히 자루 속에서 나오지 않게 꽉, 묶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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