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자주 ‘언젠가’라는 변명으로 독립을 차일피일 미루고 부모님 집에 생활비를 내고 살고 있다. 벗은 코트는 왜 바로 옷걸이에 안 거냐, 춥다면서 양말 안 신고 다니느냐는 잔소리를 들을 때, 마음잡고 감성에 젖어 자판 좀 두드릴라 치면 “찐빵아 사과 먹을래?”하고 내 방 앞으로 쑥 등장하는 손을 볼 때면 ‘독립해버려?’ 싶지만 난 수다 보따리 때문에 독립을 싹 지운다.
1주일에 사람을 만나지 않는 날이 이틀 이상이어야 하는 내향인이자 혼자 잘 노는 나는 외로움을 안 탄다고 생각했다. 근데 세상에 외로움을 안타는 인간이 있을 리 없고, 수다 보따리에 담긴 시덥잖고 쓸데없는 대화 덕분에 이를 못 느끼고 살아온 것 같다.
“오늘 출근길에 버스에서 익숙한 전주가 나오는 거야~딴따 딴따. 그래서 내가 어디서 들었더라? 하는데 싹 다~갈아엎어 주세요~ 하는 순간 바로 알았잖아. 유산슬 노래 나오더라.”
“라디오에도 유산슬 많이 나오는 갑제?”
그러니까, 출근길에 유산슬 노래를 들었다던가 오늘은 바람도 별로 안 불고 덜 춥다던가 오늘 점심 볶음밥 사 먹었다와 같은 시답잖은 이야기가 오가는 순간이 매일 존재하기에 나는 퇴근하고 집에 오는 순간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리 오너라~!”라고 외칠 때 어이없어하며 대답해주는 목소리가 있다는 게, 집에 들어섰을 때 늘 불이 켜져 있다는 게 참 좋다.
사람 마음을 푸는 건 돈보다 선물보다 말인 듯하다. 정확히는 오고 가는 대화. 특별한 일도 없는 일상을 말한다고 1시간 가까이 이어진 친구와의 통화를 종료하고 나면 역시 끼리끼리 노는 건가를 실감한다. 오늘 10시에 일어났어.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나는 잔혹한 경쟁사회에서 죽지도 않고 잘 살고, 생채기 난 마음을 회복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저축해서 독립 대신 나의 동거인인 우리 가족과 같이 이사해서 오래오래 살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