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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Jan 07. 2020

덕질의 역사

시작은 동방신기. 끝은 펭수. 

가만히 있다가 실실 웃는다. 흐뭇한미소의 가 있다면, 그게 나인 것 같다. 애인이 생긴 거냐면 그건 아니고, 썸을 타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은 겪어봤을 거라고 혼자 장담하는 한 가지! 덕질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동방신기를 알게 됐다. 친구가 좋아하면 나도 좋아! 하던 시기였던지라 인기 많던 동방신기 팬이 되기로 했다. 그러다 등굣길에 친구가 들려준 Lovin’You(동방신기 일본 노래)에 꽂혀서 입덕 했으니, 중학교 때 내 자칭 타칭 별명은 박유천 마누라였다. 체육복 바지에 지워지지 않는 펜으로 또박또박 박유천 마누라라고 쓴 체육복을 옆 반 친구에게 빌려줬던 날. 옆 반 담임 선생님은 박유천 마누라를 데려와 보라고 했고 그렇게 나의 덕질은 널리 퍼졌다.     


어딜 가도 한 명씩 있다는 카시오페아(동방신기 팬 이름)였던 나는 야자를 마치고 집에 오면 팬카페에서 영상을 정주행 하는 고딩이 되었고, ‘너 혹시 카아야?’라는 물음에 ‘응!’이라는 대답을 하는 순간 상대방과 친구가 됐다. 대학생 때도 같은 과에서 동방신기 팬을 만나 지금까지 연락하고 있으니 아이돌 팬덤은 꽤 크다. 


이렇게 9년간 지속된 덕질은 어느 순간 딱. 멈췄다. 어떤 계기가 있기보다는 딱 여기까지 좋아하면 되겠다 싶은 느낌이 왔다. 그리고 몇 년 뒤, 나의 (구) 최애는 연예기사 1면을 장식했으니 덕질을 미리 잘 접었다 싶기도.     


잘생김을 연기하는 베니 매력은 셜록을 보기 전까지 모른다.  I'm SHER locked. 이거 장난이 아닌데 뭐라고 말할 수가 없네.


동방신기 덕질을 끝내고 박쥐처럼 드라마 끝날 때마다 배우 입덕과 탈덕을 밥 먹듯이 했다. 영국 드라마 셜록을 보면서 베니(베네딕트 컴버배치)한테 빠졌다. 자막 읽을 시간도 아까워서 베니한테 눈 고정해놓고 절반 넘게 못 알아듣는 셜록+그의 인터뷰 영상만 주구장창 본 탓에 전화영어 선생님한테 ‘그거 영국 표현이야~ 맞는 표현이지만 너는 미국식 표현을 배우려고 수업하는 거니까. 수정해보자.’는 말을 종종 들었을 정도다.     

 

요즘은 김강김에 정착? 했다. 이름하야 김남길강하늘김선호 삼인방나는 덕질을 시작하면 웃음이 많아지고 그 사람의 좋은 태도를 따라 하려고 한다. 인생술집 프로그램에서 강하늘이 행복에 대해 한 말이 있다. ‘지금 내가 딱히 불행하지 않다면, 지금이 제일 행복한 것 아닐까?’라는. 행복이 특별한 한 순간이 아니라 일상 자체일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내 잔잔한 일상을 퍽 마음에 들게 했다. 명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나도 명상을 시작했는데 생각 비우는 게 쉽지 않아서 노력 중이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건 김남길이 작품에 임하는 태도다. 그는 작품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이야기할 줄 안다. 본인 역시 바닥부터 시작한 사람이라 조연들을 잘 챙기는데, 이에 관한 배우들의 인터뷰 기사를 읽을 때면 나는 일에 저 정도로 열과 성을 다 했나 싶으면서 자기반성한다. 

딱히 좋은 성격도 아닌 것 같고 얼굴도 내가 좋아하는 동글동글 순한 상이 아니고, 되게 영감님 같은데..... 가끔 심쿵시킨단 말이지. 음, 여기서 더 하면 찬양가가 나올 테니 이쯤 하고. 카메라가 꺼진 뒤 김강김의 진짜 모습까진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들이 작품에 임하는 태도는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치열하게 살고, 끈기 있게 내가 원하는 것에 매달려있게 하는 동기를 준다. 


요즘은 한 마리(?!) 늘었다. 펭수. 내가 살다 살다 사람이 아닌 남극에서 온 펭귄을 좋아할지는 몰랐지만. 펭수는 참치 길을 걷고 나는 펭수를 보며 힘을 얻어 꽃길을 걷고 싶구먼. 엣헴 엣헴.        

     

아무튼 나는 김강김과 그들이 절대 못 이길 펭수를 보면서 덕질의 순기능을 느낀다. 덕질을 하면 일상에 기대가 스며든다. 내 최애의 팬미팅 1열의 기대, 최애와의 아이컨택에 대한 기대, 그의 작품을 보러 갈 기대 등. 보기만 해도 입꼬리를 수직상승시키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리게 만들어 사직서를 지연시키는 효과까지 있다. 자고로 덕질은 나 즐거우라고 하는 거니까. 이래서 사람은 누구를 좋아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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