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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Jan 20. 2020

너는 진상인데 나는 너에게 진상이 될 수 없지.

보이지 않는 목소리

회사에 출근하기 전부터 녀석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시끄러운 소리를 주기적으로 뱉어내는, 사무실 전화기. 벨소리를 듣고 재빨리 수화기를 들면 상대방은 다양한 첫마디(물어볼 게 있는데요, 수고 많으십니다, 수업 들으려고 하는데요.)로 인사한다.     


보통 상대의 첫마디에 나는 통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아차린다. 반말과 시비조, 요구만 가득한 목소리는 처음부터 등장하는 법이라 통화 중에 피로가 쌓인다. 네, 00 학원입니다. 돈 얼마 주나? 선생님. 훈련수당 말씀하시는 건가요? 어, 그거. 교통비와 식대 월 최대 금액은 116,000원입니다. 그거밖에 안주나? 딴 데는 더 준다던데. ‘수당 받으려고 수업 듣냐!! 아아아아 짜증 나!!’를 속으로 외치고 자본주의 친절로 통화를 마치면 초콜릿이 그렇게 땡긴다.      


전화한 사람 입장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건 큰 장점인지라, 전화로 마주하는 무례함은 생각보다 많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데 가는 내 말은 늘 고와야 하고 오는 말은 지 맘대로. 꼭 얼굴 한번 봤으면 싶은 진상은 문의 내용만 많고 수업 등록은 안 해서 내 속도 뒤집어 놓는다.      


목소리만 들리기에 더 집중하게 되는 통화는 그 특성으로 인해 나쁜 말 하나하나가 더 깊게 박힌다. 아무리 정신승리! 를 외쳐도 진상과의 통화가 끝나면 마음이 지친다. 툭툭 함부로 말하는 사람, 반말이 일상인 사람, 처음부터 끝까지 짜증 난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 등. 


그런 사람 한 명에 온 기분이 바닥을 칠 때면 꼭 정반대의 사람이 등장한다. 수고하신다는 말 혹은 안녕하세요라는 어색함 섞인 목소리와 함께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과정에 대한 질문을 들을 때면 더 알려주지 못한 게 있나 생각할 정도로 친절해지고 싶어 진다. 내 감정선을 위로 쑥! 올려주는 사람. 너도 나도 처음 듣는 목소리인 거 이렇게 무난하게 흘러가 주면 얼마나 편하냔 말이야. 통화를 마치면 이런 전화만 받고 싶은 마음이 든다. 바람이 무색하게 진상은 섞이지만.      


뒷담화 좀 하자면, 전국 방방곡곡 존재하는 진상씨! 보이지 않는 목소리 안에서 난 당신의 됨됨이를 봅니다. 무례하고 오만한 속내는 숨기려 할수록 더 드러나는 법이니까요. 당신의 물음에 대답하는 게 사람임을 안다면, 같은 사람끼리 존중하는 법을 좀 배우시죠. 당연히 친절해야지? 하는 어긋난 생각으로 뱉어내는 모진 말과 비아냥거림이 당신에게 돌아가 상처로 남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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