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호찐빵 Mar 11. 2020

시간도둑 유튜브와의 공존

유튜브의 늪. 내 시간은 어디로? 

그걸 왜 그렇게 오래 봐? 싶었다. 드라마 한 편을 봐도 집중하고 나면 에너지를 소모하는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음식 먹거나, 혼자 떠드는 동영상을 왜 그렇게 오래 보는 건지.     


자취하는 친구들 입에서 심심찮게 ‘유튜브’라는 말이 오르내렸다. 내 심드렁함과 달리 주변에서 점점 유튜브 이야기를 하고, 간혹 링크를 보내주기도 했다. “막상 봐봐라, 보다 보면 한 시간 금방 사라질 걸?” 그 말에 이게 뜨고 있구나 싶어 궁금해지던 순간 게으름 때문에 유튜브에 첫 발을 담갔다.    

  

공부는 오늘보다 내일 하는 게 더 좋다는 느낌이 드는 날이었다. 뒹굴뒹굴하자니 양심에 찔려서 명분을 만들었다. 영어 유튜버 영상을 보자. 시간이 잘 가고 공부도 된다고 했으니까. 아니, 영상은 뭐 이렇게 다채롭게 많아. 막상 보려니 선택하기 어려웠다. 검색하면서 영상을 하나씩 클릭했다. 빨간 모자 쓴 영어 선생님, 미국에서 통역사로 일하는 선생님, 영국 억양을 기가 막히게 구사하는 선생님 등 다양한 선생님을 만났다. 그렇게 영어의 늪에 빠졌으면 좋을 걸 유튜브의 늪에 빠졌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는 말은 진리였다. 영어뿐만 아니라 먹고 싶은 음식만 검색하면 조리법 영상이 촤라락 펼쳐졌다. 그뿐인가. 재테크계의 고수들 다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강연도 볼 수 있다! 그것도 무료로! 게다가 위 베어 베어스부터 펭수까지 러블리한 캐릭터들도 유튜브 안에 있었다. 퇴근 후 시간을 기꺼이 유튜브에 던졌다. 




신기하게 내가 보던 영상과 비슷한 영상을 추천하듯 띄워줘서 클릭할 영상이 끝도 없었다. 매일 영상이 쏟아지고 엄청난 정보가 뇌로 들어왔지만 남는 건 얼마 없었다. 분명히 뭔가 되게 많이 보고, 들은 것 같은데 영상을 끄고 나면 재밌다~는 느낌과 나도 영어공부해야지! 하는 단시간 자극이 끝이었다. 오히려 많은 정보를 거치느라 고생한 뇌 때문에 피곤했다.      


하나의 주제 또는 내용을 오래 끌고 가며 생각하기에 유튜브 속도는 빨랐다. 읽는 속도를 조절해가면서 생각의 나래를 펼치는 책과 달리 10~15분 안에 집약된 정보는 사유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재미는 있지만, 지나치면 안 되겠다. 재밌게 보면서 웃다가 어플을 종료하고 피곤함과 짜증 나는 감정을 느낀 이후, 나는 꼭 보고 싶은 유튜버 네 분만 두고 다른 영상은 끊었다.     


나의 유튜브 목록. 딱 4개의 채널만 구독하고 있다. 


볼 영상이 확 줄고 나니 처음에는 심심했다. 날 좀 봐달라는 연관 영상을 클릭할 수 없다니. 손가락이 재생해보자고 시동을 걸었지만 꾹 참고 어플을 종료했다. 볼 영상이 없어지니 구독 중인 네 분의 유튜버가 기다려지기 시작했고 새 영상이 뜨면 반가웠다. 15분도 길어서 중간중간 앞으로 당겨가며 봤는데 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본다. 보는 영상의 수 자체가 줄어드니 시간이 남아서 유튜버가 말한 내용에 대해 혼자 이런저런 생각도 한다. 


음, 이 정도면 딱 좋다. 어플을 종료하고도 가뿐하고 좋은 기분. 

나는 유튜브로의 중독 대신 유튜브와의 공존을 유지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망그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