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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Feb 18. 2020

나의 망그르들

머리 굴리지 않아도 되는 사이


지난달에 대학 친구를 보러 경기도에 갔다. 나만 ‘면허는 있는데 운전은 못하는 친구’라 친구 차를 얻어 탔다. 친구는 복지기관에 근무해서 출장도 많고, 운전할 일도 많으니 알아서 운전하겠거니 하고 편하게 차에 올랐다. 넌 커피 못 마시니까. 목마르면 이거 마셔. 캔 음료를 보는 순간 피식, 웃음이 새나왔다. 


카페인이 안 받아서 커피를 못 마셔요.라고 10번 만나면 10번을 말해줘야 아는 사람이 있고, 한번 들으면 자, 마셔. 하고 음료를 내미는 사람이 있다. P는 후자다.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참 여전하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학식(학생식당)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는 좋아하는 음식이 꽤 달랐는데 P는 된장찌개에 든 두부를 죽어도 안 먹는 애였고, 나는 두부를 세상 좋아하는 애였다. P가 두부를 골라내면 나는 젓가락으로 콕콕 찍어먹었다. 


휴게소에 들렀을 때도 P는 아메리카노에 얼음 1개를 넣어달라고 했고 나는 사과가 들어간 차를 골랐다. 휴게소 의자에 앉아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는데, P가 예전에는 휴게소에서 뭘 먹어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나는 말 안에 숨겨진 마음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가난한 게 유일한 공통점이라 친해진 우리가 이제는 휴게소에서 어묵도 사 먹고 음료도 사 먹는다. 회사 가기 싫어도 월급이 좋긴 좋네. 따위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다시 차에 올랐다. 


내 가난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본 사람과의 동행은. 오랜만에 느껴본 편안함이었다.  


그 편안함 덕에 수다 떨다 멀미약 기운에 취해 푹 잤다. 경기도에 도착하고, 신나게 차에서 내려 경기도 친구 S가 사는 아파트로 향했다. 거의 7년 만의 방문이었다. 여전히 편식하고, 욕도 잘하는 S와 함께 우리는 만날 때마다 나오는 대학시절을 이야기했다. 그때 왜 그랬을까 싶은 일에 대해. 뭐 하고 사는지 궁금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다 문득 느꼈다. 와 우리는 두꺼운 시간을 가졌구나.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서로에 대한 관심으로 때로는 미운 정으로 차곡차곡 쌓아놓은 말과 행동이 두껍고 단단한 시간을 만들어 내게 편안함을 준 거구나 하는 생각.   

  



누군가를 만나고, 알아갈 때 나는 머리를 많이 쓴다. 한번 보고 말 사람이면 다시는 안 보니까 신나게 수다 떠는데 직장, 학교 등 계속 얼굴을 봐야 하는 사람과는 편안해지기 어렵다.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약점 잡히지 않기 위해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칸에 나를 맞추려 애쓴다. 사이가 틀어지면 업무에 지장 있으니까, 미묘한 감정싸움에 휘말려 피곤해지기 싫으니까. 그런 이유들이 가득한 사회에서 나는 공부나 일보다 인간관계가 힘들었다. 


P는 내가 머리 굴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같이 재미로 참여한 집단 상담에서, 학식이 물려서 간 식당에서 나눈 길고 긴 대화에서 P를 내 밑바닥을 보여줘도 괜찮을 만큼 안전한 사람이라고 인지했다. P는 나의 가난과, 힘듦을 마주하고 어떤 판단도 결론도 없이 그랬구나. 해주는 사람이었다. 내 마음 가장 안쪽까지 들여다봐서 유리함과 불리함을 따지지 않아도 되는 사이.      


‘망그르’라고 이름 붙인 이들은 끝없이 친구에게 관심 갖는 사람이라 고마웠다.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기억하고, 상대방의 호불호를 평가하지 않고 맞춰준다는 건 쉽지 않으니까. 공복이 길면 화내는 나를 위해 시간 맞춰 먹으러 가고,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쓸 줄 안다는 걸로도 내가 성장했다며 기특해하던 친구들. 나이가 들수록 멀리 흩어질 수도 있고 추억 속에만 남은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때까지는 건강히. 오래도록 보자. 나의 망그르들. 아, 망그르는 몽골어로 바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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