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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Mar 31. 2020

뭐든 해도 될 나이와 포기할 용기

간절히 원하는 건 이뤄진다고 이룬 이들은 웃으며 말하지.

내가 찐빵쌤 나이면 여기 안 있지. 쌤 나이면 뭐든 할 수 있는 나인데.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라고 했던 동료의 나이가 몇 살이었더라. 서른이 되기 직전이었나 서른이었던가. 서른이라는 나이가 대단하게 보였던 그때, 선임들은 나만 보면 뭐든 할 수 있다며 좋아하는 걸 하라고 노래를 불렀다. 어른들은 쉽게 내 나이면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라고 말했다. 여타의 자기 계발서도,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는 어른들도 20대는, 청춘은 열정 넘치게 도전하고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거라 말했다.     

 

나도 원하는 건 모두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았기에 열정은 충만한데 단지 돈이 없는 거라고 여겼다.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 이깟 꿈쯤은 쉽게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자신만만했다. 고생한 게 아까워서라도 성공하고 싶었고, 포기라는 단어는 한없이 나약해 보여서 싫었다. 세상에는 엄청난 노력으로 성공한 인물들에게만 박수를 쳤다. 그래서일까. 무엇도 되지 못한 보통은 실패의 다른 이름 같았다. 꿈꾸면 이룰 수 있다는 환상적인 문장이 가장 마음을 찌르게 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간절히 원하는 건 이뤄진다고 이룬 이들은 웃으며 말하지. 마치 너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김윤아 ‘꿈’ 中


꿈은 하늘인데 내가 있는 현실은, 바닥이었다. 꿈을 이루는 것만이 성공이라 믿었기에 돈 벌려고 다니는 직장에서는 마지못해 다닌다는 티를 팍팍 냈다. 회사원으로 사는 순간순간 평범하게 인생이 끝날까 봐 밤잠을 설쳤다. 이렇게 애를 쓰는데, 아끼고 아끼는데 왜 다 가질 수 없고, 누군가는 쉽게 가지는 지. 나는 세상이 말하는 꿈을 펼치는 멋진 청춘과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게 고단해 꿈마저 팽개치고 싶은 현실 청춘 사이를 어지럽게 오갔다.      


친구를 만나 별 거 아닌 이야기로 즐겁게 웃는 하루의 끝에 불안을 매달고, 안 오는 잠을 청하는 게 나라는 사람의 청춘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등 제목만으로도 내 편 같은 에세이를 질리도록 읽고 또 읽었다. 애써 괜찮은 척을 하고 때로는 정말 괜찮아지던 날을 지나며 나는 이제야 포기하는 법을 배운다.      

    

현실이 어떠했든, 사회구조가 어떠했든(그건 당장에 바뀔 수 없으므로) 꿈은 노력만으로 이루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부모님의 실직 앞에 얼마나 현실감각 없이 부푼 꿈을 꿨는지 깨달았다. 몇 년을 바라던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포기원을 제출했을 때는 꿈을 향한 마음도 식을 수 있음이 서글펐다. 거창한 성공만 보느라 꿈의 모양은 언제고 변할 수 있다는 걸 몰랐고, 환경의 영향 앞에 속수무책이 된다는 것도 모른 척했다.  


이미지 출처 - 김윤아 '꿈' 뮤직비디오 中


꿈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포기할 줄 아는 용기는 꿈을 꾸는 것보다 훨씬 강한 내면을 필요로 했다. 꿈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살다 보니까 사랑도 하고, 꿈도 이룬다는 구절은 정말 맞는 말이었다. 터무니없이 높은 꿈을 바라보며 현실을 지옥으로 취급하지 않고, 지금의 ‘나’에 집중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게 어른이 되어가는 길이 아닐까.      


흔히들 나이가 들수록 용기내기 어렵다고 한다. 겁이 많아서라고 단정했는데, 겁을 낼 줄 안다는 건 현실을 볼 줄 안다는 거다. 포기할 건 포기할 줄 아는 용기와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는 인생의 또 다른 진실을 받아들일 줄 아는 너그러움을 지녔다는 것. 그래서 지금이 좋다. 아직 속은 좀 쓰리지만 내가 가질 수 없는 꿈을 버리고 나니 마음 편하다. 나에게 맞게 설계된 아름다운 내 집, 1년에 몇 번이고 떠날 수 있는 해외여행, 글만 쓰고 살 수 있는 여유를 포기했다. 대신 평가 시즌이 아니면 정시퇴근하는 직장이 있기에 글 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아름다운 내 집은 없지만 부모님 집에서 싼 월세(생활비)를 지불하며 맛있는 집 밥과 적당한 소음으로 외로움도 겁도 느끼지 않고 평온히 사는 일상에 만족한다.     


글로 밥벌이하면서 여유롭게 여행 다니는 꿈은 지웠다. 2년 남짓, 그 꿈을 이루겠다고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때가 있었다. 프로젝트가 있어서 야근하는 날이면 욕에 욕을 했다. 그러면서도 평가 결과에 따라 액수가 달라질 인센티브 생각에 화장실 갈 시간도 아껴서 서류 작업을 했다. 정시퇴근을 하면 짬짬이 글을 썼지만 공모전은 다 탈락했다. 두 번 정도 공부를 위해 퇴사했는데 집에 생활비는 줘야 했기에 아르바이트했고, 시험이 끝나면 바로 취업해서 일했다. 결국 사회가 말하는 성공은 하지 못했지만 치열하게 보낸 20대가 무의미하지 않다는 건 안다.


이제  나를 힘들게 하는 꿈은 됐다. 그저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평생 책과 함께 하면서 사람들의 고민에 귀 기울여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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