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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Apr 27. 2020

듣기 싫은 말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은 거절하겠습니다.

명절 때마다 큰아빠 고정멘트가 날아든다. 


남자친구 있나? → 예/아니오 → 더 늦기 전에 결혼해야지. 여자는 빨리 결혼해야 된다. 


이쯤 되면 더 대화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내 돈은 착착 모이고 있지만 더 이상 대화는 거절한다는 마음으로 ‘돈 없어요.’라는 마지막 한 방을 날린다. 돈 많은 남자 만나면 된다는 삼단 콤보에 결국 대답을 포기한다.      



이 얘기를 하면 대부분의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이게 여자만의 일이겠는가. 친척의 관심이라는 허울 좋은 변명아래 난도질당한 마음을 살필 때면 상대방 손에 쥐여진 건 관심이 아니라 잘 벼린 칼끝임을 본인은 모르는 건가 모른 척 하는 건가 알 길이 없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때도 그랬다. 수능 전. 그저 지원했을 뿐인데 심리학 배워서 못 먹고 산다는 말을 왜 심리학과를 지원하게 됐어? 보다 딱 100배 더 들었다. 글 써서 돈 벌고 싶다는 말에는 요즘 세상에 누가 책을 읽느냐고 했고, 그들의 입맛에 맞춰 공무원 공부를 해보겠다고 하면 공무원 되는 게 어디 쉽냐고 하늘의 별따기라고 했다.      


이런 말을 듣는 순간마다 아닌 척 하지만 속은 심란하다. 뭘 할 때마다 응원을 들어봤어야 말이지. 부정적인 말은 시작도 하지 않은 일에 최악의 결과라는 무게 추를 달게 만든다. 충조평판. 충고 조언 평가 판단 사총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혹시나, 이러다가, 어쩌면 이라는 무수한 불안의 가정 속으로 던져 넣는다.   

   

초조와 불안과 막막함이 뒤엉킨 무수한 낮과 밤을 지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하고 외칠 수 있었던 건 멋진 ‘어른과의 만남’ 그리고 ‘타인’이라는 경계를 확실히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친척, 지인, 친구, 연인 등 그들은 내게 ‘타인’이다. 내 인생을 함부로 좌지우지 할 수 없는 타인. 나도 모르는 나를 나보다 더 잘 알 수 없을 이들이 찌르는 말에 나까지 확신을 보탤 필요는 없다. 타인에게 충고조언평가판단을 하는 건 내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도 아니고 친척이니까, 친구니까 우정으로, 사랑하는 내 자식이니까?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정말 남이 아닌 우리라서, 애정 어린 마음에 하는 말이었다면 쉽게 충고하고 평가내릴 수 없어야 맞는 거다. 좋아하는 이의 인생에 너 안 될 걸? 왜 이렇게 안 하는데?라는 말을 꺼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법에 어긋나는 잘못된 길로 가는 게 아니라면.     





자신의 의견이 정답이니 일단 따라오라는 식의 대화를 구사하는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과거를 참 좋아한다. 지금이 현실인데 현실이 어두우니 찬란한 과거를 잊지 못한다. 왕년의 나를 떠올리며 타인을 재단해서라도 자신을 드러내고 위안삼아야 편안해지는 고작, 딱 그 정도인 사람에게 얼마나 무수히 휘둘렸던지. 결론도 비슷하다.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데 지금 잠깐 삐끗해서 이렇다. 그러니 너는 이렇게 해라. 


참고할 만한 내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자기 현실도 바꾸지 못하고 뒤만 돌아보는 사람 이야기? 오래 들어서 좋을 거 없다.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오르게 하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멋진 어른과의 만남도 있다. 상담을 청할 때마다 어떤 해결책도 없이 그저 들어줌으로서 공감을 몸소 알려주신 분. 나는 그녀가 멋있었다. 졸업하고 찾아갈 선생님 한명 없던 내가 유일하게 학교를 졸업하고 찾아뵀던 교수님이기도 했다.      

  

출처 - 베니작가님 '그래도 괜찮은 하루' 中


직업상담사로 첫 발을 떼고, 실적압박에 퇴사 생각밖에 안 나던 때였다. 연차를 써서 교수님을 찾아간 날, 교수님이 그러셨다. 실적을 요구하지 않는 직업은 없어. 00이가 상담센터를 간다고 해도 마찬가지일거야.’ 처음에는 단호한 말에 서운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마웠다. 그 당시 좋은 조건의 직장을 다니면서 투정부리던 내 마음. 다른데 가면 무조건 좋을 거라는 마음만 담고 일에 충실하지 못한 채 샛길로 새는 나를 붙잡는 말이었다. 늘 들어주기를 택한 교수님이 던진 직언은 옳았다. 실적을 기대하지 않고 자리만 지키고 있다고 돈 주는 회사는 없었다.      



교수님처럼 나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공감을 바탕으로 하되 지적하고 싶어서 때를 기다리기보다 상대방에게 직언이 필요한 순간 바른 말을 전할 수 있는 지혜로움을 갖춘 어른. 내가 나를 응원하며 남도 응원해줄 수 있는 마음과 들어줄 수 있는 여유를 품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 될는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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