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호찐빵 Jun 15. 2020

사주가 말했다.

사주는 밑그림일 뿐, 완성된 그림이 될 수 없다고.

새해가 되면, 엄마는 늘 가던 점집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한 해 운수를 듣는 재미로 엄마를 따라 점집으로 향했다. 크게 용하지도 그렇다고 다 틀리지도 않는 점집 아줌마는 좋은 말만 했다. 모서리 없는 둥근 말은 생채기를 내는 법이 없어 나는 아줌마와 마주하는 시간을 재미있어했다. 내가 성인이 됐다는 것 빼고는 여느 해와 다를 바 없던 신년. 아줌마는 갑자기 휘파람을 불더니 아이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공주와 같아. 맑고 깨끗해. 공주는 외롭지. 아주, 외로워.     


쌍꺼풀 진 둥근 눈에서 나올 수 없는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한 날. 나는 알 수 있었다. 매년 공부 열심히 해서 이름처럼 빛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은 응원이었고, 지금은 내 명(命)을 점친 거라는 걸.     


아줌마는 말했다. 점을 보러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고. 어디서도 말 못 할 속상하고 응어리진 속마음. 다 들어주고 풀어주어 잘 살게 되면, 그때부터 발길을 끊는다고 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감사하다는 인사 한번 들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그렇지만 네가 가진 기운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테니 사람 마음 들여다보고 살라고 했다.     

 

나는 웃었다. 당연히 그럴 거니까. 대학교 1학년이 끝날 즈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신년운수를 보지 않았고, 운명을 우스워했다. 좋은 말은 두루뭉술함으로 느껴졌다. 사람 이야기 듣고 사는데 외롭긴 왜 외로워. 바빠 죽겠구먼. 그런 거 안 봐도 되니까 엄마, 해 바뀔 때마다 돈 쓰지 마! 그러나 엄마는 신년이면 점을 보러 갔고 용하다는 소문이 들리는 곳에서 점을 보기도 했다.      


나 잘 풀린다 그러지? 뻔~한~소리 하지?     


니 사주 좋다카대. 가만히 기다리면 니 발로 교회 가는 거 멈출 거라 카든데? 원래대로 돌아가게 될(할머니가 웬만한 절은 다 다니신 불교신자셨다.) 끼라고.      


내 사주는 불교에 심신안정이라도 느낀대? 웃긴다, 진짜. 미신이 판치는 세상이다 싶었다. 오기가 생겨서라도 평생 다닐 거라고 했다. 내 발로 교회 안 다닐 일은 없으니까. 그리고 5년 뒤. 나는 교회에 가지 않았다. 갑자기 교회가 싫어진 것도, 믿음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마음이 그랬다. 이만하면 된 거 같다는 마음. 그렇게 발길을 끊었다. 입사 1년도 안 된 내게 승진운이 있다는 헛소리가 현실이 되는 일까지 겹쳤을 때, 결국 운명이라는 게 있는 건가 싶었다.     




첫 해외여행에서 비행기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결혼을 앞두고 사고를 당한다던가 하는 일들. 사람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 궁금해서 사주를 보러 갔다. 얼마나 쉽게 내 미래를 말하는지 이건 뭐 AI보다 대답이 빠르다. 그러나 미래는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넘기고, 엄마를 따라 오랜만에 아줌마를 보러 갔다. 아줌마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둥글고 좋은 말만 했다. 오랜만에 왔다는 말에 엄마는 내가 그동안 스트레스를 받아 많이 아팠다고 했다. 아줌마는 예끼 이 놈! 하는 말투로 말했다. 두 손 꼭 쥐고, 당당하게 살라고. 네 뒤를 지키는 이가 있으니 믿고 살아도 된다고. 아줌마는 넌 딱 이름값만큼 하고 살 거라고 했다. 나는 반갑게 인사하고 점집을 나왔다. 아줌마에게서 예전의 날카로움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든든한 응원을 받은 기분이었다.      


올해는 나도, 엄마도 신년운수를 보러 가지 않았다. 예전에는 사주나 타로 등을 보면서 확실한 답을 얻고 싶었지만 이제는 안다. 아줌마가 왜 신년 운수 대신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만 했는지. 사주는 밑그림일 뿐, 완성된 그림이 될 수 없다. 발버둥 친다고 해서 다가올 일을 막을 순 없으니 내 손으로 어쩔 수 없는 명(命)은 흘러가는 대로 두고 지금을 열심히 살면 될 일이다. 미래를 착착 맞추지 못하는 걸 보면 에이, 이게 뭐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네 사주는 이러하니 이런 일을 하시오! 보다 그저 열심히 살라는 말이 정답이다 싶다.      


아주, 외롭다던 그때의 말은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외로움을 느낄 거라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심리적으로 건강해진 내담자가 상담실을 나서는 뒷모습을 보는 건 늘 내가 되겠지. 꼭 상담이 아니어도 이야기를 듣고 사는 길을 걸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그렇게 흘러가는 거라면 더 많은 걸 경험해야겠다. 무수한 경험이 쌓여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일단은 오늘을 잘 살아내 내일을 맞이하지, 뭐.       

매거진의 이전글 어릴 때는 몰랐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