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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Aug 22. 2021

보통 불행

영원한 평온은 없어요.

그 사람을 아실지 모르겠다. 심연에 박힌 당신의 무의식을 기꺼이 파헤쳐 꽤나 불편하게 만든 한 남자.


특정 사람만 보면 이유 없이 얄밉게 느껴지던 마음, 그럴듯한 말로 늘어놓는 변명,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는 거라고 단정 짓던 근거 없던 확신. 있어 보이는 말로는 정신분석이라 칭하고, 흔히 아는 단어로는 무의식.


이 모든 걸 만들어낸 사람, 프로이트다.     


이미지 출처 - 나


심리학 개론 서적에 꼭 들어가는 그림이 있다. 빙산의 일각. 인간이 의식하는 범위는 빙산의 일각일 뿐 수면 아래 잠긴 거대한 빙산인 무의식이 인간 행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프로이트다.


곁에 있던 사람, 없던 사람 죄다 떠나가도 꿋꿋하게 유아기 성욕(유아도 성욕을 느낀다.)을 주장한 사람이자, 주구장창 성(性), 성(性) 얘기하고 다니는 변태 아냐? 싶지만 바람피우지 않고 평생 자신의 아내만 사랑하며 가정에 충실한 남편이기도 했다.     


나는 프로이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초적인 욕구들만 콕콕 건드리는 게 불편했고 심리테스트는 재밌기나 하지 정신분석은 관심조차 없었다. 프로이트는 개론에 나오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대학원에서 또 만났다. 그놈의 프로이트를.      


스무 살에는 ‘뭐야, 이 사람.’하면서 질색했는데 서른에는 ‘와, 프로이트는 이걸 어떻게 발견했지?’싶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시대에는 의식, 무의식, 성욕과 같은 개념이 존재하고 있었고. 익숙했기에 놀라울 일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시대에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등장시킨다는 걸 생각해보면 놀라웠다. 이래서 나이 들수록 입맛도 바뀌고, 생각도 바뀌고 아무튼.      


정신분석 책을 정독하며 찝찝하게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던 ‘상담’ 효과에 대한 고민이 풀렸다. 어릴 때는 상담이 마법 같을 줄 알았다. 상담사에게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면 문제가 뿅! 하고 해결돼서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해보니까 뭔가 이상했다. 심리적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위기는 또 찾아오고 회사에는 또라이 보존의 법칙이 존재했으며 흔히 ‘보통’이라 칭하는 사람들은 살기 힘들어질수록 서로를 향한 응원 대신 분노를 쌓았다.


심리적 문제 하나를 해결했다고 해서 그 사람 내면이 매일 행복할 순 없었다.   

   

그렇다면 상담이 왜 필요할까. 상담 같은 거 없어도 세상 잘 돌아가는 거 같은데, 아닌가. 잘 안 돌아가서 힐링 열풍이 불고, ‘나’ 다운 것을 찾아 헤매고 마음이 어떠냐는 한마디에 울컥, 눈물부터 보이는 건가.


그런 내 복잡함을 프로이트는 자서전에 남긴 문장을 통해 해결해줬다.     


“분석의 목적은 신경증적 불행을 보통 불행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 이무석, 『정신분석에로의 초대』, 도서출판 이유(2003), 207쪽     


신경증을 불러일으키는, 예를 들어 형부를 사랑하고 있다는 죄책감 때문에 다리에 마비가 온 여성이 있다. 이때 정신분석을 통해 다리의 마비 증세는 사라질 수 있지만 형부에 대한 사랑과 고민은 남는다. 이걸 우리는 보통 불행이라 부른다. 신경증이 사라진 자리엔 인간이 살면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불행이 남는 것이다.   

  

보통 불행. 이 단어가 좋았다.


인간의 생(生)에 평생 유지되는 평온 같은 건 없다. 보통 불행을 견디며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을 거치며 어른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상담은 해답을 제시하지도 행복을 주지도 않는다고.


살까요, 죽을까요? 퇴사할까요, 말까요? 의 모범 답안 대신 고민과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불면의 밤과 함께 얻는 신경증을 죽이고, 그 자리에 오는 보통 불행을 잘 견딜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울 뿐이다. 실제로 정신분석의 목적은 약해진 자아를 강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데 있고 사람의 자아는 충분히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참고문헌

이무석, 『정신분석에로의 초대』, 도서출판 이유(2003), 14-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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