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장승재, 장승재 작가, 장승재 강사, 장승재 칼럼니스트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같은 소금이지만 맛의 미묘한 차이를 안다. 구수하고 단 맛이 나는 소금, 정말 짜기만 한 소금, 바다의 향과 뒷맛이 강한 소금 등은 적절하게 그릇에 담긴 음식 맛을 배가 하며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진다.
맛집으로 소문난 곳도 손님의 입맛을 이끌도록 수십 년을 연구와 공부를 한다. 타 음식점도 가보고, 전혀 동종업계의 음식점이 아닌 곳에서도 맛을 찾아내는 작업을 계속한다.
우리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어렵지만 이런 미묘한 감정을 통해 관계를 잘해 나가는 사람에게 좋은 평판을 가진다. 학문으로 공부를 해서 아는 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넘어지고 아차 하는 수난과 깨달음에 연속이다.
성숙하다는 건 무엇일까? '그럴 수도 있어'라는 순간이 쌓여서 동일한 자극에도 손쉽게 넘어갈 수 있는 태도이다. 처음 겪거나 처해진 상황에서는 감정의 통제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논리와 이성으로 감정이나 습관을 통제하기에는 곤란하다.
무언가를 한다는 건 성공과 실패의 기로에서 매번 예민하게 반응하는 지점을 뒤로 미룰 수 있다. 이전에는 반작용의 힘이 강해 하루 종일 기분을 좌우했지만 계속 이를 수록 마음의 머무는 시간은 찰나가 되며, '그럴 수도 있어'라고 적당하게 편안해진다.
마음이 잔잔하거나 풍족하다는 건 어른이 되어 맛을 표현하는 감각이 살이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상대편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동일한 무게를 더해 간다.
세상의 진리는 없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만큼의 범위에 한정한다. 산전수전 겪은 어르신이 손자와 손녀의 철없는 행동이 귀여운 이유는 모두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과 귀찮은 일, 해야만 하나 하기 싫은 일, 해야 하지만 하기는 싫다. 그런 일은 섬싱섬의 꺼 정성을 쏟는 만큼 다채로운 맛을 낼 수 있는 기술을 익힌 것이다. 즉, 주방에 적이 아닌 함께 갈 수 있는 동료들이 하나 둘 생겨난다.
이해하고 수용함은 세월을 견디고 이기며 감정의 눈금이 3,5,7,10이 있다고 가정할 시에 10에 가까워진 삶을 지향해 나아갈 거다. 눈금이 낮을수록 감정이 폭발하거나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자주 표한다. 하지만 눈금이 긴 사람은 감정을 정확하게 짚고 이해하여 동일한 감정을 표현한다.
음악이 아닌 코드는 상대방과의 정서적 공감과 의견 일치 순간에 말한다. 공감을 불러일으켰거나 감정의 교감이다. 다수의 경험과 시도로 얻어질 수 있는 결실이다. 정답은 누구도 모른다. 그저 느리게 천천히 나를 돌아보고 너를 돌아보고 하면서 나의 색깔을 갖도록 노력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