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포기하지 않는 의연한 태도를 모범적인 자세라 여기며
비장하고 용기 있는 의지를 치켜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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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면 어떡하니?”
“열 번 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이것도 못 참으면 다른 곳에서는 낙오된다.”
마치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을 뿐인데
크거나 혹은 작으면 모두 맞지 않는 체형을 탓하는 것과 같다.
적성에 맞지 않아 방황과 실패를 하면 약한 존재로 만든다.
직장을 준비하면서 스터디 그룹을 한 적이 있다.
그 중에 나이가 많은 취업준비생 누나는 이력서에 생긴 경력 공백에 걱정이 많았다.
몇 년 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수차례 불합격의 고배를 마신 그녀는
면접관이 졸업 이후의 행적에 대해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을 풀어나갈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그래야만 할까?
우리 사회는 몇 번의 경제 위기와 대규모 실업률을 겪으면서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로 변하였다.
청년에게 기회를 여러 번 주기보다 단판으로 끝내는 엄숙한 분위기다.
이런 사회의 기조에 전체 구성원은 파도에 넘어가기 보다는 도전을 피하고
늘 안정적인 방향으로 모색해 나간다.
누구나 실패하고 방황할 수도 있는 법인데...
그래도 한심하고 잘못된 존재로 여기지 말고 처음에 자전거를 배울 때를 떠올려보자.
넘어지더라도 끊임없이 일어서는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시 일어서지 않았는가?
처음에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반복할수록 성공의 기운이 다가온다.
절망하지 말고 스스로 실패에서 괜찮다고 말해보자.
나는 두 번의 직장을 그만두고 나를 벼랑에 몰지 않고 여행을 가고 글을 썼다.
나의 선택을 말리는 동료, 친구, 부모님까지 많았다.
버티고 일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끝까지 잃지 않았던 웃음이었다.
버티는 내성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금세 포기하고 자조할 수 도 있다.
내가 건네는 말이 당신에게 소리 없는 아우성일 수도 있다.
사회에서 큰 돈을 환원하신 어르신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그들은 한결같이 인생은 짧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신다.
어렵고 힘든 고비가 있을 때마다
오늘을 꿈꾸면서 살았다고 눈물을 훔치면서 대답한다.
인생은 100살까지 산다고 산출해서 비교하면 우울한 오늘은 티끌에 불과하다.
도전에 자책하고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기보다 나에게 너그럽고
끊임없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며 다정하게 대해야 한다.
그래야만 오랫동안 내가 원하는 길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