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최고의 생각을 얻는 법
멍 때리기 시간
제갈소정
얼마 전 아무것도 아닌 말 한마디에 체한 것처럼 답답했던 적이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고 뭘 해도 계속 떠오르면서 기분이 찝찝했다. 아무 의욕이 생기지 않아 도망치듯 술도 한 잔 마시고 드라마를 보다가 그냥 자버렸다. 밤새 악몽에 시달리다 맞이한 다음날 아침, 노트에 속상한 마음을 끄적거리다 하늘을 바라보며 멍 때린 후에야 홀가분해졌다.
최근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을 때만 활동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가 존재한다고 한다. 외부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판단과 같은 과제를 수행하고 있을 때에는 작동하지 않고, 쉴 때만 활성화 되는 뇌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 고유의 성찰기능이 명상이나 휴식할 때 활발히 작동하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2001년 워싱턴 의대의 마커스 라이클 교수의 연구발표를 신호탄으로 수백편의 논문이 쏟아지며 과학적으로 확인되었다. 연구들에 따르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사람을 비로소 사람답게 하는 능력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바로 자아성찰, 자전적 기억, 사회성과 감정의 처리 과정, 창의성 등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편안히 쉬고 있을 때, 평상시에는 서로 연결되지 못하는 뇌의 각 부위가 연결되는데 스웨덴 출신의 뇌 연구자 앤드류 스마트는 이 때 창의성과 통찰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새로운 발견과 창의성은 쉴 새 없이 정보를 습득하고 판단하며 신경을 집중할 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뇌 활동을 멈추고 휴식하는 상태에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독일의 쾰른대학교 신경과학자 카이 포겔라이 역시 사물들의 연관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이 뇌가 아무런 임무를 부여받지 않고 그냥 쉴 때 활성화된다는 것을 밝혔다.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며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보는 기능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최고의 생각은 생각을 하지 않을 때야 가능하다니 역설적이지만, 쉬어도 된다니 왠지 안심이다. 하지만 온갖 채널에서 쏟아지는 자극에 노출된 현대사회에서 수만 가지 잡생각을 잠재우기란 쉽지 않다. 과연 내 안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어떻게 해야 가동시킬 수 있는 걸까?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을 수 있는 방법은 가지각색일터. 해변에 앉아 지는 석양을 바라보는 등 자연에 취해보거나, 평소에 하던 익숙한 운동이나 산책 같은 신체활동도 좋다. 아르키메데스나 뉴턴도 연구실이 아닌 곳에서 멍하게 지내다가 놀라운 발견을 했고, GE의 전설적 경영자인 잭 웰치도 회장시절 매일 1시간씩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필자는 하루 일과의 시작과 끝 그리고 따뜻한 차를 마실 때 10분 정도씩 습관처럼 멍 때리기 시간을 가진다. 아무리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눈을 감고 있으면 ‘아이들 유치원 버스시간이 언제로 바뀌었지?’, ‘자료를 언제까지 보내주기로 했었더라?’ 같은 잡념이 떠오르곤 한다. 이것들을 깊이 생각하지 말고 가볍게 받아 넘겨야 하지만, 잘 안될 때에는 눈을 떠 머릿속에서 생각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모두 다 끄적거려 빼내곤 한다. 수면의 찰랑찰랑한 파도를 잠재웠다면 이제 깊고 고요한 곳으로 갈 준비를 끝내고, 비워진 뇌는 비로소 쉴 수 있게 된다. 고요함 속에서 곧 그대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무한한 연상 작용으로 보물을 캐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