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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소정 Mar 29. 2021

파문(波紋)

안을 채운 후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자연의 섭리

파문(波紋) 

제갈소정


  모든 걸 다 가지고 해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목표로 가득한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하나씩 성취해낼 때만 살아있다고 느꼈다. 어느 날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도 들었다.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혼란이 가득했다. 이때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들을 내뱉었지만, 모두 나약한 마음에서 나온 말들이었다. 무언가를 해내고 가져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현실도피하듯 먼 곳을 보며 달리기만 했다. 

  불안을 조장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어서인지 많은 이들이 더 큰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 받고 증명 받길 원한다. 안타깝게도 숫자로 증명되는 영향력이 곧 자신의 가치가 된다고 믿는다. 말 그대로 인플루언서(influencer)가 되기를 원하기에 SNS상에서 팔로워 수를 늘리고자 노력하고,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주부들의 꿈이 되고,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유튜버가 인기 장래희망으로 급부상한단다. 현실에서는 입을 닫고 살며, 익명의 누군가에게는 잘 보이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모습들을 볼 때면 뭔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다.

물수제비

  공원에 조깅을 나갔다가 아이들이 호수에서 물수제비 놀이하는 것을 보았다. 가만 보고 있노라니 자연의 섭리가 그 안에 있었다. 호수의 잔잔한 물 위에 돌멩이를 하나 던지니 퐁당 하는 소리와 함께 물결이 동심원을 그리며 수면위로 번져갔다. 중심에서부터 시작된 작은 원은 바깥으로 더 큰 원이 되어 뻗어갔다. 물결이 번지면서 마루와 골을 만들어 냈고 그 무늬는 문자 그대로 ‘파문(波紋)’이 되었다. 수면에 이는 물결은 사그라질 때까지 번져나갔다. 그렇다. 영향은 이렇게 미치는 거였다. 

  생각도 안에서 바깥으로 꺼내야 진짜 공부가 되듯, 존재 이유를 증명하고 싶다면 가장 안쪽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세상에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우선순위는 매일 얼굴을 보며 수시로 말을 건네며 바로 내 손이 닿고 직접 눈을 보며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직접 얼굴을 맞대는 이들에게 사랑을 관심을 전하는 것이 먼저다. 가족이나 친구, 이웃이라 불리는 이들에게 집중할 때에는 세상의 인정을 받기 쉽지 않지만 존재 이유는 타인이 아니라 내가 증명하는 것이다. 파문의 시작은 중심부터다. 동심원을 그리며 안에서 바깥으로 잔잔히 퍼져나가는 것처럼 중심에서 가까운 한 영역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이것은 일, 사회 등 점점 더 큰 영역의 변화도 동시에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내 손이 닿는 곳,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서부터 최선을 다하고도 사그러들지 않을 때 그 다음 마루와 골이 생기며 좀 더 큰 물결로 번져갈 수 있다. 안을 채운 후 바깥으로 나가는 자연의 섭리를 행동으로 옮기는 이가 비로소 진정한 인플루언서다.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혹 더 많은 이들에게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큰 꿈을 가졌다면, 지금 이 순간 나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시작해보자. 그대의 기쁨과 세상의 깊은 배고픔이 만나는 곳이 당신이 있어야할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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