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경영 방법을 터득하는 가장 쉽고도 빠른 길
공간 정리의 힘
제갈소정
“공부나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생기지 않나요?” 라는 질문에 대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책상정리’라고 대답한다. 가끔 예외도 있지만 사람은 대부분 책상 위의 먼지도 닦고 서랍정리도 해야 비로소 무언가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모양이다. 필자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생긴 피터팬 책상을 떠올리면 아직도 미소가 지어진다. 책상 앞에 앉아 별것도 아닌 것들을 정리정돈하며 혼자 꽁냥꽁냥 했드랬다.
어린 맘에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것이 참 좋았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힘든 일이 있거나 지칠 때, 집필을 하거나 연구를 할 때도 책상정리를 한다. 또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안 잡힐 때도 온 집안을 다 뒤집어엎었다가 정리정돈을 하곤 한다. 어지럽혀진 물건들을 하나하나 점검하여 버릴 건 버리고 체계를 만들어 각각의 제자리를 찾아주고 나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나만의 회복탄력성 강화 방법 중 하나랄까.
18년의 유배기간 동안 500권 이상의 책을 집필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지식 경영은 놀랍게도 환경을 정리하는 것과 닮아있다. 비슷한 것끼리 묶어 계통있게 정리하는 것이 학습의 효과를 높인다는 ‘촉류방통(觸類傍通)’, 종합하고 분석하여 꼼꼼히 정리하라는 ‘종핵파즐(綜覈爬櫛)’, 먼저 전체 얼개인 목차를 세우라는 ‘선정문목(先定門目)’, 모아서 나누고 분류하여 모으라는 ‘휘분류취(彙分類聚)’ 등 공부는 복잡한 것을 자신만의 체계 안에서 단순하게 만드는 일이다.
방은 ‘뇌의 바깥 방’이라는 말처럼 내면과 외면은 연결되어 있기에 자신의 물리적인 공간은 뇌의 바깥 모습일지도 모른다. 어질러진 공간은 정신없는 머릿속을 대변한다. 그렇기에 좀처럼 질서를 보여주지 않는 잡다한 정보의 덩어리들을 나름의 질서대로 갈래지어 구분하고, 배열하며, 순서 지을 수 있는 힘은 자신이 속해있는 환경을 직접 매만지며 키울 수 있다. 나아가 머릿속에 어떤 체계가 가동되고 있지 않으면 많은 지식들을 배워보았자 내 것이 되기는 쉽지 않다. 둘 곳이 없거나 어디 있는지 모르는 물건들은 무용지물인 것처럼, 인출단서를 가지지 않은 정보들은 쉽게 꺼내 쓸 수 없기에 내 것이라 보기 어렵다.
최근 아이들에게도 이런 공부의 기본을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에 혼자만의 공간을 꾸며주었다. 어차피 주 활동은 거실에서 이루어지지만 스스로 자기 물건을 정리정돈하는 연습은 자기 책상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만의 책걸상은 ‘맥락 의존적인 학습’과도 관련되어있다. 어떤 것을 학습할 때는 학습의 내용뿐만 아니라 학습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나 분위기와 같은 다른 자극이 함께 저장된다는 현상으로 공부를 할 때 사용하는 펜, 지우개, 노트 등의 물건들도 해당된다. 이렇게 자신만의 수많은 물건들을 나름의 분류기준을 갖고 하나하나 정돈하는 것은 지식을 경영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가장 쉽고도 빠른 길이다.
공부나 업무의 효율을 높이고 싶다면 자신의 공간부터 먼저 시작해보자.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물리적 장소와 가장 편안하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적 좌표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공간이라는 그릇이 변하면 그 안에 담긴 나 자신도 저절로 변하게 마련이다. 무턱대고 노력만 퍼붓기보다는 환경이 나를 돕도록 정돈하고 관리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