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아지트 Oct 13. 2023

도대체 언제까지 당하고만 살텐가...

내 안의 '블루독' 안아주기 2

어제 나는 어떤 회의에서 권위자가 ‘솔직하게 표현하세요~’라는 말에 지나치게 솔직한 표현을 해버렸다. 사실 그분을 10년 가까이 만나면서 그 말은 이중메시지라는 것을 안다. 답은 정해져 있음도 안다. 그러나 왠지 이제는 더 이상 주어진 ‘정답’에 그저 순응하기가 싫었다. 권위자에게 ‘no’라고 말하지 못했던 지난 시절의 한이 터져 나왔는지도 모른다.      


‘모두 내 의견에 동의하시죠?’하는 말은, ‘반대는 없어! 너희에게 선택권은 없어!’로 번역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여러사람 앞에서 ‘소장님...그렇게 하시면 저는 불편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해버렸다. 권위자 앞에 당연히 순복해야하는 분위기에서 반대를 당하는 것은 그분의 수치심을 자극시켰나보다. 밤새 해결되지 않은 수치는 오전 9시도 되기 전에 ‘통화를 원해요’라는 톡을 보내게 했다.      


‘솔직한 소통을 원해요’라고 시작한 통화는, 한시간 내내, ‘어제 네가 한 그 한마디가 집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할 것이며, 지난 날 그런 경우 자신이 어떤 피해를 당해왔는지’ 설득과 푸념으로 채워졌다. 결국 나에게로 부터 ‘어제는 제가 경솔했습니다’로 몰고 가고 있었다. 그분에게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참 멋진 분이라고 생각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던 분이셨는데, 최근 아이처럼 변해가시는 것이 안타까왔다. 처음 만났던 10년전과는 너무나 달라진 모습에 실망도 하고 ‘아...이분은 지금 논리가 통하는 상태가 아니구나...달래야하는구나...’하고 결론 내리고나니, 그분이 원하는 ‘정답’을 드릴 수 있었다. 마치 원하는 장난감 사달라고 마트 바닥에서 뒹구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안겨주었을 때 뚝 그치는 장면처럼, 한시간의 줄다리기는 ‘정답’을 품에 안겨주었을 때 끝이 날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도 모르게 계획에도 없던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되었다. 멍하니 청소를 하면서, ‘왜 내가 갑자기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거지?’ 하고 정신을 차린다. 내 안에 해소되지 않은 '불쾌함'들을 청소해내고 싶었던 무의식이 있었던 모양이다. ‘화 덕분에 귀찮아 미루던 화장실 청소를 했군...’     


어쩌면 그 소장님은 통화 후 개운했을 것이다. 자신안의 ‘불쾌’를 나에게 투사하고 ‘쾌’만을 자신안에 남겼기 때문이다. 그분이 던지고 간 ‘불쾌’는, 푹자고 상쾌하게 일어난 나의 아침을 ‘불쾌’로 만들어 버렸다.


소장님의 70년동안 형성한 인격을 바꿀 수도 없고, 그분의 급격한 노화로 인한 인지상태를 바꿀 수도 없다. 그분이 어린 시절 어떤 환경에서 어떤 외상을 겪어서 그런 이중메시지를 던지는, 타인을 가스라이팅 하는 인격이 되었는지 탐색하는 일은 피해자인 나를 위로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저 분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지...’하고 이해하려하는 내가 오늘은 싫다. 그래서 화장실에 락스를 그토록 많이 들이 부었는지 모르겠다...  


살면서 이런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를 만나면 피하는게 상책이다. 그들은 절대 타인의 마음이 어떠할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지키고 싶은 그 ‘힘’이 무너질까 두려워하고, 자신에게 수치를 주었다고 생각하는 대상(자신이 스스로 열등감을 느꼈다고 해도)에게 은근히 수치심과 죄책감을 주입시킨다. 자신앞에서 쩔쩔매는 사람, 자신을 근거없이 추앙해주는 사람만을 옆에 두려하고, 조금이라도 자신을 위축시키는 사람은 끌어내려 자기 앞에 무릎꿇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겉으로 표방하는 모습은 지극히 겸손한 사람이기 때문에 빨리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은 절대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것이고, 자신을 바꾸려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로부터 나를 지키려면, ‘바꿀 수 없는 그’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그와 만나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감정을 개입시키지 말아야한다.      


결국 힘이 약한 사람들은 혼자 화내게 되어 있다. 힘을 쥐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느낀 부당함에대해, 화를 내는 일 밖에는 아무 대처도 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 나는 그동안 미뤄둔 일들을 단번에 해치울 수도 있다. ‘화’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그분을 미워하는데 쓰긴 너무 아까운 나의 에너지를 나를 위해 쓰기로 한다!        

작가의 이전글 100 대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