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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아지트 Oct 20. 2023

EMDR 2.0

내 안의 '블루독' 안아주기 3

“눈 감으세요~그 자리로 가봅시다”

“무엇이 보이세요?”

“엄마의 긴장한 얼굴...”

“나는 어떤 모습인가요?”

“많이 놀라서 얼어 붙어 있어요...”

“어떻게 해주고 싶은가요?”

“흑흑...”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많이 놀랐지...내가 안아줄게...”     


교통사고로 인해 ‘너무 깜짝 놀란 아이’는 불안, 우울, 불면, 지속적인 멀미, 긴장 속에서 여전히 떨고 있었다. ‘너무 깜짝 놀란 아이’의 뿌리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EMDR 치료는 PTSD 치료에 매우 효과적인 치료법이다. 불안, 공포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서 기억을 재처리한다. 1987년 Francine Shapiro 박사에 의해 개발되었다. EMD(Eye Movement Desensitization 안구운동민감소실)에서 EMDR(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 안구운동민감소실 및 재처리)로 진화발전되었다. 나는 EMDR의 최신버전 EMDR 2.0을 경험해본 것이다. 안구만 움직이는 것이 아닌, 몸동작까지 곁들이며 기억을 떠올리고 재처리한다.     


“위로, 위로, 위로” --> “위로, 위로, 위로”

“나에겐 위로가 필요했어” --> “나에겐 위로가 필요했어”

“엄마는 나까지 위로해줄 경황이 없었어” --> “엄마는 나까지 위로해줄 경황이 없었어”      


손으로 오른쪽 허벅지를 두 번, 왼쪽 허벅지를 한번 치면서, 눈동자는 의사 선생님의 현란한 움직임대로 따라가면서, 의사 선생님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과정속에서 뇌가 기억을 다르게 처리하는 모양이었다. 뇌가 텅 비는 느낌이 들었고, 놀란 마음이 진정되었다. 30분동안 온 몸이 바빴는데 뇌는 진정이 되어 갔다.    

  

너를 보호해야 했던 보호자는 지금 어쩔 수 없는 다른 사정이 있구나...”   

   

치료실에서 어린 내 손을 잡아주었던 ‘나’는 치료실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동안 계속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눠주고 있었다. ‘아이’는 눈물을 닦고,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요...내가 혼자 있기 싫다고 따라갔더라면 나도 엄마도 고생이었을거예요. 차라리 혼자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것이 나았을거예요. 엄마를 이해해요...”      


위로하는 ‘나’는 하루 종일 가슴이 먹먹하다. 위로받는 ‘나’는 하루 종일 머리가 멍~하다. 놀라운 것은, 긴장하거나 놀랄 때 플래시 백으로 번쩍 떠오르던 그때 그 장면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떠올리다가도 귀찮아지고 잘 생각이 나지 않는 느낌이다. 최면에 걸린 사람같다. 사고이후 조금만 긴장해도 목젖까지 부풀어오르던 심장이 이제야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느낌이다. 숨을 들이마실 때 아랫배까지 숨이 단번에 쑤욱 들어온다. 숨을 쉴 때 편안해졌다. 50여년간 숨을 얕게 쉬던 나였는데, 드디어 깊은 호흡이 가능하다.     

 

왠지 오늘 밤엔 잠도 푹 잘 수 있을 듯하다. 사고이후 2달간, 아니 50여년간 잘 때조차 긴장을 풀지 못하던 그 ‘아이’는 오늘 그 ‘위로자’의 손을 잡고 단잠에 빠져들 예정이다. 이제야 나는 나의 위로자로, 보호자로 내면안에 자리잡은 듯하다. 불안해하는 내담자의 손을 잡아주던 그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고 있다. 내 손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이젠 내담자의 손을 잡을 때 예전보다 더 따스한 온기를 전할 수 있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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