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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아지트 Oct 30. 2023

박미숙, 죽기로 결심하다

영화로 마음 읽기 3

제목은 강렬하고, 명랑해보이는 분위기 속에 무심히 툭 던지는 이슈는 묵직하다.


윤미숙 감독의 단편영화 <박미숙, 죽기로 결심하다>를 통해 애착 손상을 가진 두 남녀의 다르고도 닮은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미숙은 엄마 대신 할머니와 살았다.  아직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에 집착이 강한, 정서적으로 ‘미숙’한 상태지만, 할머니를 돌봐야하는 이유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어른'처럼 살아야했다. 할머니에게는 자신의 힘겨움을 말할 수 없었다. 너무 힘들때는 아무도 못알아듣게 일본어로 감정을 토해낸다.

일본어를 전공했지만, 어쩔수없이,  영어 치원에서 일한다. ‘미숙’한 영어로 ‘미숙’한 아이들을 돌보며...


할머니와 고양이가 모두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은 어느 날, 직장에서도 해고통지를 받는다. 해고의 이유는 ‘tomato’라는 단어를 〔토~메이로우〕가 아닌, 〔토마토〕라고 발음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버겁기만 했던 영어로 부터 홀가분해진 상태가 되었지만. 자신을 위로해줄 대상도, 자신이 돌봐줄 대상도 없는 세상에 더 이상 살아 있어야 할 이유를 찾을수없었다.


술을 잔뜩 먹고 한강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을 때 그녀 앞에 나타난 ‘신’.


‘신이신가요? 신이시라면 저 좀 데려가 주세요~’라고 말하고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보니 자기의 방이다. 옷이 벗겨져있다. 부엌에는 낯선 남자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가 어젯밤 ‘신’이라 여겼던 바로 그 ‘신’이 눈 앞에 있다.      


토해서 더러워진 옷을 빨아주고 오물을 닦아주고, 편히 쉴수있게 해준'신'은 아무런 원망도 공치사도 없다.


‘신’은 태어나자마자 엄마에게 버려지고 일본으로 입양보내진 아이다. 성년이 되고 나서 엄마의 나라에 엄마를 만나러 왔지만, 엄마를 찾지 못하고 엄마의 나라를 사진기에 담고 있던 중이었다. 우연히 혼자 일본말로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고 있는 여자를 앵글에 담게 되고, 그녀를 따라가던 중, 그녀가 신세를 비관하고 자살하려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녀에게 ‘신’처럼 다가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자리를 옮겨준다.     


미숙은 신이 찍은 사진들을 구경하면서 신이 세상을 사진에 담되, 긍정적인 모습을 담고 있음을 발견한다. 짜증많은 관리 아저씨에게서도 그분이 활짝 웃는 모습을 찾아 담아내는 ‘신’이었다.


미숙은 신과의 만남이후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신이 일본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양 손의 엄지와 검지를 모아 만든 손가락 메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 네모안에 아름다움을 담아내려 노력한다. .


미숙에게는 여러 가지 상실을 다루어낼 힘이 부족했다. 앞이 막막하기만 했던, 그래서 죽음을 생각할수밖에 없던 그녀에게, ‘신’과의 만남은 참으로 '신과의 만남'이 되었다. 비록 그녀보다 한참 어린 ‘신’이었지만, 그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 있었다.      


같은 피사체를 놓고도 어떤 면을 사진에 담을 것인가...는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비관적이기만 하던 미숙의 삶 속에도 아름다움을 찾아 사진 속에 담을 수 있다.   ‘누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였다.


 ‘미숙’의 시선으로는 세상이 더 이상 살만한 곳이 아니었다. 엄마도 할머니도 고양이도 직장도 모두 자신에게서 떠나가버려, 이 세상에 자기 혼자인 느낌을 견디기 힘들었다. 차라리 세상을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신’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아직은 살만한 곳이었다. 비록 엄마가 자신을 버렸지만, 그런 엄마를 용서하고 엄마와의 화해를 위해 기꺼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엄마를 만날 수는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아직은 살만한 곳이다’를 가르쳐줄수 있었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도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삶의 태도가 달라지는 듯하다.      


최근 ‘부모가 미숙해서 불안정 애착으로 자라버린거같아 속상해요. 부모가 원망스러워요. 원망스러운데 실컷 원망도 할 수 없는 내 처지에 화가 나요’라며 자해하는 내담자가 떠올랐다.


그녀에게 예쁜 가을을 사진에 담아오라는 과제를 내 주었다. 세상은 아직 살만하고 잘 살펴보면 아름다운 구석이 있음을 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신이 선택한 가정에서 태어날 수는 없었지만, 성인이 된 이제는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꾸려가야하는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아가는 것이 ‘성숙’임을 생각해보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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