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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아지트 Nov 11. 2023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 중년

중년은 젊다고 우기기엔 조금 오래되었다. 그렇다고 늙었다고 말하기엔 아직 너무 싱싱하다. 고도의 화장술로도 가려지지 않는 주름이 있고, 몸은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한 나이...그러나 중년은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엔 그리 늦지 않은 시기다.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


중년기 이전의 삶은 서툴렀다. 어렸고 덜 다듬어져 있었다. 주어진 역할에 충실해야하는 시간이었다. 나 자신을 사랑할 여력이 없었다. 부모님들에게도 그들의 욕구에 어느 정도 만족을 드렸고, 아이들도 성인이 된 이 시기...이제는 나 자신에게 몰두해도 되는 자유가 생긴 나이다. 여전히 역할에 충실함으로 자기를 확인하려는 사람들은 갑자기 주어진 이 자유에 대해 현기증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제 타인의 인정에서 나를 확인하려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내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일의 중요성은 알게 되었다.      


최근 나는 그림책을 읽으러 가까운 도서관에 갔다. 바쁠 때는 보이지 않던 도서관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책 만들기, 영상편집, 라디오 디제잉...다양한 프로그램을 무료로 가르쳐주고 있었다. 예전에는 ‘굳이 뭐하러...’하며 지나쳤을 일들인데, ‘아...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등록부터 했다.      


잘할 필요가 없는 나이여서 가능했을까?


완벽주의인 나는 ‘내 전문분야가 아니니까 못해도 돼서 너무 좋아’라는 즐거움에만 집중했다. 배우기 시작할 때는 서툰 내 모습이 싫어서 ‘아...내가 이걸 왜 등록했을까...사서 고생한다...’의 시간이 있기도 했다. 포기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일도 아니었어서 잠시 망설이기도 했다. 그러나 ‘서툼’의 시간을 견디고 나니, 어느덧 그림책의 본문과 그림을 완성했다. 아직 출판이 된 것은 아니지만 이미 ‘그림책 작가’가 된 느낌이다. 동네 라디오 프로그램도 이미 졸업 녹음을 마쳤다. ‘완성도보다는 완성이 목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년기 이전의 삶에서는 뭐든 잘해내려고 애썼던 나였다. 하지만, 중년기에 나는, ‘못하면 좀 어때...’의 여유로움이 생겼다.      


‘왜 그것밖에 못했어?!’하는 가혹한 초자아에 시달리던, 불안했던 전반기와 확연히 달라졌다. 요즘 나는 ‘뭐든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그 시간보다 더 많이 행복하다. 좀 못해도, 좀 서툴러도 허용이 되는 마음이 나를 보호하고 나 자신을 사랑스럽게 느끼게 해준다.      


네가 너의 좋은 엄마가 되어줄 수 있단다     


내가 내담자들에게 자주하는 이야기다. 내 인생의 전반기에는 그런 엄마를 '가질 수 없었다' 하더라도, 내가 그런 엄마가 '되어 줄 수는 있다'. 내가 바라는 엄마의 모습으로 내가 나를 보호하고 수용하고 인정하고 칭찬한다. 전반전 경기는 치열했었다. 아이 둘을 어린 나이에 서툴게 그리고 힘겹게, 그러나 최선을 다해 키웠었다. 그때 경험을 통해 배운 노하우-'웃어주는 엄마로 존재하기', '네가 원하는게 뭔대? 라고 물어봐주기', '좀 못하면 어때?', '한번 해봐~'-가 내 안에 장착되어 있다. 그래서 이제는 나에게 좋은 엄마노릇을 잘 해줄 수 있다.  


결혼을 너무 일찍한 것이 늘 후회로 남았었다. 청년기가 너무 짧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년기가 되고 보니 오히려 감사하다. 결혼을 늦게한 친구는 지금 사춘기 자녀와 씨름하느라 중년기의 여유로움을 즐길 겨를이 없다. 애 대학보내고나면 바로 노년기로 직행할 판이란다. 그 친구가 유학할 동안 나는 첫아이 기저귀를 빨고 있었는데...그 시절 나는 그 친구를 부러워했었다.


나는 중년기를 사랑하기로 했다.  마음만은 청년기인, 이 중년의 시기를 즐겁게 보내기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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