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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아지트 Nov 23. 2023

너무 착한 아이는 아이가 아니었음을...

   

어릴 때부터 ‘넌 어쩜 그렇게 어른스럽니...', '착하다...’라는 말을 자주 들은 사람은 자칫 행복한 삶에서 멀어질 위험이 다. 그 말을 듣고 자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린다. 여전히 아이같은 모습, 철없이 놀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 칭찬에 자신을 맞춰버리느라 조숙해진다.


그들은 어린아이로 남아있을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거나, 타인의 욕구를 채워주느라 제대로 실컷 아이답게 놀지 못한 채로 어른이 된다. 한번도 제대로 아이였던 시절이 없이 어른이 된다. 그들은 마치 부실공사로 지어진 건물과도 같다.


1,2층이 제대로 튼실하게 지어지지 못한 건물은 높이 쌓아올릴수록 위험하다. 재수가 좋아서 5,6층까지 올라간 상태라면 그제서라도 잠시 멈춰 1,2층을 보수해야 한다. 언젠가 그 건물은 와르르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     


너무 착한 아이...

   

최근 수능을 치른 K양은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잃은 기분이라며 나를 찾아왔다. 엄밀히 말하면 수능이후 실의에 빠져있는 딸이 걱정된다며 K양의 어머니가 보냈다. 기대한 만큼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은 모양이다. 중학교때부터 의사가 되고 싶어했기 때문에 공부를 꽤 열심히 해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의대에 지원할수있는 성적을 받지못한 지금, 누군가 자기에게 '너는 이걸 원해야해'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란다.


K양은 재혼가정에서 자랐다. 그녀의 엄마는 전처의 소생인 아들을 친아들처럼 키우다가 결혼 3년만에 K양을 낳았다.  계모라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두아이를 공평하게 키우려 노력했지만, 태어나자마자 친모에게 버려진 아들은 오랜 시간 방황했다. 늘 오빠 때문에 집안은 시끄럽고 부모의 얼굴은 근심이 가득해보인다. 그런 환경 속에서 K양이 일찌감치 결정한 것은  ‘나라도 부모님을 웃게 해드리자’였다. 부모를 웃게 할수 있다면 뭐든 열심히하고, 잘 하려 애썼다.     


그녀의 엄마는 가난한 시골출신으로 대학은 꿈도 못꾸는 환경에서 살았다.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었지만, 집안사정을 알기에 피아노학원에 보내달라는 요구조차 못하고 살았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에 시집을 가서 자신을 똑 닮은 딸을 낳았다. 피아노, 바이을린,  미술, 승마까지 닥치는대로 시켰다. 뭐든 시키는대로 잘하는 딸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공부까지 잘하는 딸에게 ‘너는 커서 의사가 되라’는 그 한마디가  K양의 사춘기를 장악했다. ‘엄마를 웃게 해드리는 일'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프로그래밍된 인생 목표였기에 힘든 줄 모르고 달려왔다.  철이 너무 일찍 든 아이는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엄마가 무엇을 원하는 지에 더 열심을 낸다. 의대를 포기할수밖에 없는 지금, 무엇을 '원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네 가슴이 뛰는 일이 있어? 엄마하고 상관없이 평생 이 일만 하다 죽어도 행복할 것 같은, 그런...?’ ‘저는 사실 노래하는게 좋아요...노래방에 가면 가슴이 두근대고 행복해져요’. 그녀는 아무 대학이나 얼른가서 노래하는 동아리에 가는 것을 꿈꾸고 있단다. 그런데 엄마는 재수를 해서라도 의대를 한번 더 꿈꿔보자고 한단다.      


K양에게 공부잘하는 것은 오히려 그녀만의 꿈을 이루는데 방해가 되었다. 차라리 공부를 못한, 부모님이 아무 희망을 걸지 않고 포기한 오빠는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쉐프가 되어 있단다. 자기하고 싶은거 하며 사는 오빠가 부럽단다.

 

"나 어릴 적 우리 엄마 내게 하신 말...이 다음에 커서 뭐될라고 그러니? 존경받는 의사, 변호사가 되려면, 이제 그만 놀고 들어가 공부 좀 해라~~" "My My My Mother, 나는 노래하고 싶어요! 스티비원더 비지스처럼 노래할래요..."


김건모의 'My son'이라는 노래가 떠오르며, 그녀가 차라리 오빠처럼 공부를 못하는 아이였다면, 조금만 덜 착한 아이였다면, 자신의 진로를 자기가 선택할수 있었을까...


재수를 해서 의사가 되면, 잘 해낼것이다. 엄마가 웃을것이니까... 또한 환자가 '웃어'줄수있게 열심히 일하겠지...그리고 결혼후 배우자가 웃게 노력할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살것이다. 그러다 어느날, 지금처럼, '저 길을 잃은거 같아요...저 왜 사는지 모르겠어요. 저 이제 무엇을 원해야하는거죠?' 하게될 수도 있다.


"너는 좀 놀아야 해!"


방학중에라도 실컷 놀으라고 했다. 별로 놀아보지않던 그녀는 그것도 자신없다고 한다.

권투와 드럼을 배우고 싶으단다.


착한 아이들은 내면에 공격성이 고여있다. 권투든 드럼이든 해보라고 했다. 잘하려고 하지말고 실컷 두드리며 건강하게 빼내버려야 산다.


지금이라도 '부실공사' 임을 알아차렸다면,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무엇을 참고 살았는지, 왜 그랬어야했는지 스스로 알아줘야한다. 그때는 그럴수밖에 없었더라도 이제는 내가 나를 보호해주고 용서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아이처럼 놀아야한다. 무엇을 해야 즐거운지 찾아야한다. 그래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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