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아지트 Dec 05. 2023

여자 사우나에서 일어나는 '전치'와 '해소'

삶에서 배우기

피부과 의사 선생님들은 세신이 피부 건강에 해롭다고 말하지만, 나는 주기적으로 대중탕에 가서 세신을 한다. 그 개운함은 온 피부로 기억되는 중독성이 있다. 미국으로 이민 간 언니는 그 개운함을 너무나 그리워한다. 미국에도 한국식 세신을 하는 곳이 있긴 한데 그 가격이 10배가량이란다. 가격은 10배인데, 그 개운함은 1/10이라서 한국에 오면 체류기간 내내 사우나가는 일에 집착한다. 웃픈 것은 그 언니의 남편은 피부과 의사라는 점이다.      


사우나는 언제 가도 좋지만, 특별히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날에 가면 더 좋다. 뜨거운 사우나실에 앉아 있다 보면,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던 생각들이 뜨거움 속에 녹아버리는 느낌이다. 몸이 뜨거워지기 전에는 온갖 잡생각이 나지만,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하고 모래시계의 모래가 거의 다 내려가고 있을 무렵에는 아무 생각이 남아있지 않다. 모래시계의 마지막 모래 한 알이 떨어지는 그 순간, 사우나 문을 박차고 나올 때의 그 상쾌함...그것은 인생 첫 마라톤 경기에서 완주했을 때의 성취감만큼이나 크다. ‘아, 해냈어!’     


정성스레 준비하는 2인1조 '경기'


여자 사우나에서는 세신사와 손님의 2인1조가 하일라이트다. 목욕탕 안에 들어가면, 일단 가장 먼저 세신사 ‘언니’에게 예약대기를 걸어야 한다. 내 순서가 되기 전까지 준비과정을 거쳐야 한다. 첫번째, 그동안 몸에 발랐던 바디크림의 유분기를 비누로 뽀독뽀독 씻어 낸다. 두번째,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감싸 덮고(뜨거운 열기에 머리카락이 손상되지 않도록) 사우나실에 들어가 1차 때 불리기 작업을 진행한다. 세번째, 사우나에서 몸이 덥혀지고 나면 온탕에서 2차 때 불리기 작업을 한다. 뜨거운 탕 안에는 모래시계가 따로 없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세신사에게 불려지기만을 쫑긋 기다려야 한다. 내 번호가 불리워질 때 자신만만하게 세신사에게로 갈 수 있다는 것은 제대로 준비되었다는 증거이다.


행여 이 중 한 과정이라도 소홀해서 때 불리기가 덜 되면 엄청난 고통을 감래해야 한다. 세신사 언니는 ‘덜 불었네...’하면서 온갖 구박을 쏟아낸다. 그리고는 밀려 나오지도 않는 때를 기어이 벗겨내겠다고 온갖 힘을 쏟는다. 그런 날에는 본의 아니게 각질과 함께 피부까지 벗겨진다. 붉어진 피부와 온몸으로 느끼는 쓰라림을 견뎌야 한다.


준비가 제대로 된 날은 자신있게 베드에 눕는다. 그때 나와 세신사는 순조로운 2인 1조 ‘경기’를 시작하게 된다. 선잠이 들었다가도 ‘탁탁’ 두 번 손바닥을 두드리면 나는 잠시 깨어 옆으로 돌아눕는다. 또 한번 ‘툭툭’ 내 다리를 치면 다른 쪽으로 돌아 눕는다. 그렇게 앞, 뒤, 양옆의 각질을 벗겨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따듯한 물을 온 몸에 두 번 껸져주면 나는 몸을 일으켜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한다. 우리 둘 사이에는 아무런 언어가 없이도 '몸의 언어'가 착착 맞아진다. 준비과정이 잘 된 날의 2인1조 ‘경기’는 마칠 때 ‘아쉬움 없이 잘 싸웠다’, 그 느낌을 갖게 한다.      


이렇게 한번 세신을 받고 나면 온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묵은 각질의 무게보다 많은 무게가 덜어지는 느낌이다. 피부에만 신진대사가 일어나는게 아니고 온 몸의 혈액순환과 마음의 신진대사까지 일어나는 모양이다. 묵었던 각질과 함께 묵어있는 고민들도 조금은 가벼워지고, 따끈한 몸에 온 몸이 나른해지는 것처럼 오래된 긴장도 이완되는 느낌이다. 그리하여 그날밤은 한결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숙면을 취한다.     


'덜 아프기 위해 고통을 선택한다'


오늘 사우나실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70대 할머니인데 매일 4~5시간을 사우나와 냉탕을 번갈아 오가신단다. 나는 15분을 견디는것도 힘이드는데, 그걸 4~5시간동안 계속한다구...왜 그렇게까지 하시냐고 물었더니, ‘그 덕에 살아...그래야 들 아파...’ 하신다.

극강의 뜨거움과 차가움을 오가는 자극은 그분의 삶을 지속시키는 힘이란다.


무엇으로부터의 도피일까...심리적 고통을 신체적 고통으로 ‘전치’시켜 극복해내려는 무의식적 소망이 있는 것일까...매일 그렇게까지 벗어나야하는 그 고통은 어쩌면 외로움이 아닐까...그곳에 와서 사우나실 속에서 ‘형님’ 소리 한번 듣고, 세상사는 이야기 나누며 잠시라도 ‘나는 혼자가 아니야’를 느끼고 싶으신 것이 아닐까...그 맛에 극한의 고통이 견뎌지는 것 아닐까...


어쩌면 나도 세상과 호흡이 잘 맞지 않는 날에, 그 스트레스를 세신사와의 착착 맞는 호흡을 통해 ‘해소’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몸의 언어'가 착착 맞아질 때 느껴지는 '오르가즘'을 느끼고 오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성실한 준비과정을 통해 개운한 2인1조 ‘경기’를 잘 하고 돌아왔다. 어떤 스트레스는 사우나실의 뜨거움에 녹아버렸고, 또 어떤 스트레스는 개운함 뒤로 숨었다. 무기력한 마음은 피부세포 하나하나를 자극받으며 생기를 되찾는다. 오늘 밤 나는 숙면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의 노화 방지에게  피부노화는 양보하세요


피부과 의사의 말대로 세신이 피부노화를 가져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세신을 포기할 수 없다. 내 안에 있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마음의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면 마음의 노화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분들도 세신을 통해 묵었던 긴장, 스트레스를 이완하는 그 개운함, 그 회복을 경험해본다면 무조건 세신을 나쁘다고만 말하진 않을 것이다. 피부과 의사들 중 누구라도 '마음의 노화방지를 위해 피부노화는 조금 양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해준다면, 미국사는 언니도 남편에게 '나, 사우나 좀 다녀올께. 당신도 같이 갈래?'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너무 착한 아이는 아이가 아니었음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