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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아지트 Dec 07. 2023

70만원 짜리 인생공부

삶에서 배우기

 

회의를 참으로 지루해하는 나다. 로봇처럼 앉아있다가 위원장님 마음안에 이미 결정된 답에 대해 ‘찬성합니다’라는 대답만 가능한 회의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위원장님(아바이수령님)이 최고이십니다"의 분위기에서 얼굴 굳히지말고 무사히 살아남아야한다. ‘어디 아프다고 하고 빠질까...’하며 들어간 줌 미팅...위원장님이 너무나 해맑은 미소로 ‘잘 들 지냈어요? 오늘 회의 시작하기 전, 새로운 소식하나 전해요. “정민서 부위원장님은 12월까지만 역임하시기로 했어요. 내년에는 OOO 교수님을 부위원장으로 초대하겠습니다”    

 

뭐라고? 하다못해 아르바이트생에게 해고통지를 해도 석달전에 미리 알려주는데, 이렇게 회의상에서 갑자기?      


물론 직장에서의 해고는 아니지만, 그 자리에 대한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러한 일방적인 태도에 대해 어이가 없다. 위원장님의 그 ’진솔함‘에 대해 어이가 없다. 그분은 습관적으로 ’우리 진솔하게 소통해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누구도 그분에게 진정한 ’진솔함‘을 보여서는 안된다. 위원장님에게 ’진솔함‘은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들려주는 일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그분이 나를 자신의 측근자리에서 짜르게된 결격사유는, 내가 그분이 아프다고 여러번 말했는데 위로의 소통이 없었다는 것(참고로, 그분은 70대 이혼남), 위원장님이 단체의 성장에 반하는 행동을 하실 때 지나치게 솔직하게 조언했다는 것, 그 단체의 성장에 지나치게 진심이었다는 것...무엇보다 위원장님의 수입에 내가 직접적인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사회적인 지위도 없고, 일개 상담사인 나의 충성이 더 이상 그분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누가봐도 자기 옆에서 보좌를 할 사람은 자신에게 오래 충성했던 사람보다, 사회적으로 그럴 듯한 자리에 있는 사람을 앉혀야겠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서러웠다...     


성장을 위한 단체인 줄 알고 평생회원 회비까지 내고 내 발로 충성을 다짐하며 들어간 단체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보니 위원장님을 위한 앵벌이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 나이에 왜 여기에 와 있지?'했을 때는 이미 내 통장에서 70만원이 지출된 후였다.      


회의에서 갑자기 통보를 받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표정관리하느라 정작 느껴야할 감정을 못느꼈다.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들이 얼어버리는 그 현상이 또 나타난다. 자려고 누웠는데, 그제서야 ’참 어이없고 서럽네...이제 그만 떠나자‘ 하는 마음이 확실해지면서 그 평생회비 70만원이 생각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아까운 지출이다.      


’권위자에게 받은 거절감‘은 내 안에 있던 여러 무의식적 경험들을 들쑤시고 있다. 그래서 점점 더 화가 나고 점점 더 서러운 모양이다. 그 시절 나의 생존권을 쥐고 있던 ’권위자‘들을 향한 분노는 나를 ’나쁜 아이‘로 느끼게 만들고, 그 화를 내 자신에게로 돌리고, 결국 부정적 감정을 부인하고 격리시키게 한다. 지금 나도 사실 주지화로 방어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을 분출하려해도 ’권위자‘를 보호하는 기제가 먼저 작동하고 있는 나를 본다. 화를 낸다해도 권위자는 바뀌지않을거라는 어린시절에 내려버린 결론이 나를 여전히 지배한다.


어떻게 하면 이 거절감이 내 안에 평생 트라우마로 남지 않고, 평생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내 권리를 지킬 수 있을까...내 내담자라면 나는 무엇이라고 말해줄까...    


70만원짜리 인생공부를 했다. 

"아무에게나 과잉충성하지말것!"


제발 이 지출이 헛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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